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이 열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지원한 289명 중 영상 예선 심사를 통과한 60명이 기량을 겨루는 중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은 배진우, 황보강, 김채원, 김동주, 김준호, 김송현, 김선아, 이재영, 문성우, 박진형, 신창용, 선율, 예수아 등 13명이다. 국가별 참가자 수에서 한국이 가장 많다. 10일 끝나는 본선에서 뽑힌 24명이 12~17일 준결선을 치르며, 결선에 오른 12명이 26~31일 최종 순위를 가린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힌다.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으로 번갈아 열린다. 한국은 바이올린 부문의 임지영(2015), 첼로 부문의 최하영(2022), 성악 부문의 홍혜란(2011)·황수미(2014)·김태한(2023) 등이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만약 이번에 한국 피아니스트가 우승하면 모든 부문에서 우승자를 배출하게 된다.
앞서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예선이 열렸다. 전 세계 642명의 지원자 가운데 영상 심사를 통해 171명에게 자격이 주어졌고, 한국인은 총 24명이었다. 이후 한국인 4명을 포함한 9명이 기권해 162명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66명과 쇼팽 콩쿠르 측이 바로 본선 자격을 준 7개 콩쿠르 입상자 19명 등 85명이 오는 10월 2~23일 열리는 본선에 출전한다. 한국인 본선 참가자는 예선을 통과한 이효, 이관욱, 나카시마 유리아(한국·일본 이중국적) 등 3명과 바로 본선 참가 자격이 주어진 이혁까지 총 4명이다. 이혁과 이효는 형제 사이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공동 3위에 오른 임동민-임동혁 형제에 이어 20년 만에 형제 입상이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이어 오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리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본선은 한국 출신 박채영과 유성호 등 2명을 포함해 30명이 겨룬다. 이들은 앞서 340명이 응모한 영상 심사를 거쳐 지난 4월 77명이 치른 라이브 오디션에서 선발됐다. 여기에 피아노·바이올린·성악을 번갈아가며 여는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는 지난 3월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 출신 김세현이 1위, 이효가 2위 없는 3위에 올랐다. 또 오는 8월 27일~9월 7일에는 부조니 콩쿠르도 열린다. 본선 진출자 34명 가운데 한국 출신은 조준휘, 김동영, 김강태 이재영 등 4명이다.
올해는 세계 클래식계의 주요 피아노 콩쿠르 5개가 열리는 특별한 해다. 4년 주기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반 클라이번 콩쿠르, 5년 주기의 쇼팽 콩쿠르, 3년 주기의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 그리고 2년 주기의 부조니 콩쿠르가 한 해에 열리는 것은 유례가 없다. 국내 클래식계에서는 지난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과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에 이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를 새로운 스타가 등장할지 주시하고 있다.
올해 콩쿠르에 출전 중인 한국 연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신예도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들도 적지 않다. 신창용과 선율은 각각 2018년과 2024년 지나 바카우어 국제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 있고, 박진형은 2016년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또 2022년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 우승자인 이혁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1년 늦게 열린 2021년 쇼팽 콩쿠르 파이널리스트였다.
젊은 연주자들이 이처럼 콩쿠르에 몰리는 것은 세계 클래식계에서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하기 위해서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이들 회사에 소속되어야 하는데 ‘클래식계의 변방’인 한국 연주자들이 얼굴을 알릴 방법으로 아직 콩쿠르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그래서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해외 매니지먼트의 낙점을 받지 못해 공연 기회가 증가하지 않으면 좀 더 권위 있는 콩쿠르에 다시 도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허명현 음악 평론가는 “콩쿠르 우승이 반드시 그 연주자의 커리어를 보장하진 않지만, 아직도 한국인 연주자가 해외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콩쿠르가 필수적”이라면서 “조성진과 임윤찬 등 뛰어난 연주자들도 콩쿠르를 통해 실력에 대해 형식적인 공인을 받고 나서야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인 연주자들의 콩쿠르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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