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가 주로 발생하는 곳이 배터리 셀 생산공장 근처에서 대형 전기차 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배터리 셀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랩(불량품)이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주된 원료지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앞으로는 수명을 다한 사용 후 배터리 비중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활용 사업자들은 이에 발맞춰 전처리 공장입지를 선정하고 있다. 전처리란 사용 후 배터리나 공정 스크랩을 파·분쇄함으로써 유가금속이 포함된 검은 가루 형태의 ‘블랙매스’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9일 프랑스 1위 금속 재활용 기업 데리시부르그와 함께 프랑스 발두아즈 지역에 전처리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27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연간 2만t 넘는 사용 후 배터리 및 스크랩 처리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프랑스 및 인근 유럽 국가에서 수거한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해 원료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프랑스를 택한 이유에 대해 “사용 후 배터리는 국외 운송이 까다롭고 운송 비용도 많이 들어 원활한 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배터리 수요가 많은 지역 내 전처리 공장 설립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럽자동차공업회(ACEA)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해 기준 전기차 판매량이 29만614대로 유럽 31개국 전체 판매량(199만3102대)의 15%를 차지한다.
그동안 전처리 공장은 배터리 셀 생산기지 근처에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배터리 셀 공장에서 나오는 스크랩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주된 원료이기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폐배터리 재활용 원료 가운데 스크랩이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달한다. 성일하이텍이 지난 2017년 헝가리, 2021년 폴란드에 전처리 공장을 지은 이유다. 두 곳에는 한국 배터리 셀 기업들의 유럽 생산기지가 있다.
최근 이 같은 구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면서 폐배터리 발생지의 중심이 생산공장에서 소비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SNE리서치는 지난 2023년 17만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폐차량이 2030년 411만대, 2040년 4227만대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폐배터리 재활용 원재료 중 사용 후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20%, 2040년 50%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른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자도 전기차 소비가 활발한 지역에 전처리 공장을 짓는 분위기다. 성일하이텍은 지난 3월부터 미국 인디애나주에 세운 북미 첫 전처리 시설 ‘리사이클링 파크’ 가동을 시작했으며, 조지아주 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9월 유럽 최대 무역항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전처리 시설을 준공했다.
이는 글로벌 환경 규제 대응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북미에서 재활용한 소재를 사용한 배터리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줄 계획이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배터리 ‘탄소발자국’(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 신고를 의무화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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