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산금리 산정 시 법적비용을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가운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실효성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은행이 가산금리보다 우대금리를 조정해 대출금리를 주무르고 있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출금리가 실제로 낮아지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은행법 개정안이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해당 개정안은 은행이 대출 가산금리에 지급준비금, 예금보험료, 출연금 등을 포함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은행이 비용 부담을 대출 차주에게 전가하면서 높은 이자수익을 얻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발의됐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최장 180일)와 본회의 심사(최장 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통과돼도 대출금리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뺀 값인데, 개정안에 따라 가산금리를 낮추더라도 은행권의 우대금리 꼼수를 막기 어려워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란 분석이다.
은행연합회의 대출금리 모범규준은 가산금리를 자본비용, 업무원가, 법적비용, 기대이익률 등을 감안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우대금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예대금리차를 분석한 결과 확대의 주된 원인은 우대금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4.48%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시작된 지난해 7월 4.10%에서 0.38%포인트 증가했다. 이 기간 기준금리가 0.61% 포인트 내리고 가산금리는 0.03%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우대금리가 0.96%포인트 줄었다. 기준금리 인하 폭이 우대금리 축소로 상쇄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산금리에 원가성 비용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해 낮춘다 하더라도 우대금리를 낮추거나 예금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손쉽게 예대금리차를 유지할 수 있다. 최종 대출금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에선 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금리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시각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법안에 포함된 내용은 가산금리 결정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으로, 시장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줄곧 법 개정안에 대해 “시장 질서를 위반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왔지만 이를 드러내놓진 못하는 실정이다.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되레 역풍을 맞을까 속앓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반대 의견을 꾸준히 냈지만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상황에서 더 이야기하기가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