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다며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제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겠다는 스승, 스승을 향해 원망과 증오의 말들을 퍼붓다가도 자신을 두고 떠나지 말라며 울부짖는 제자.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사제지간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코믹하다.
묘한 사제 관계를 소재로 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하이퍼나이프’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설경구와 박은빈을 만났다.
두 사람 역시 대본을 봤을 때 첫인상을 ‘묘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박은빈은 “‘이 오묘한 대본은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들이 오가는, 평범하지 않은 사제지간이었다”며 “평소처럼 ‘이 드라마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걸까’하는 질문을 품지 않았다. 대신 시청자들이 새로운 감각을 체험해보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하이퍼나이프’는 뇌에 미친 두 천재 외과의사 최덕희(설경구)와 정세옥(박은빈)의 치열한 대립을 그린 의학스릴러다. 하지만 스릴러라고만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알아보지만, 그 반가움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한다. 늘 투덜거리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밑바탕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특히 덕희가 하는 선택들은 늘 세옥을 위한 것이어서 얼핏 순애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시청자들은 이 작품을 ‘피폐 멜로’라 부르기도 한다.
설경구는 “(세옥에 대한 덕희의 감정은) 복잡한 것 같다. 처음엔 애증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엔 사랑 같기도 하고, 측은지심도 있다. 세옥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기도 한다”며 “덕희는 세옥에게 데칼코마니 같은 끌림을 느낀다. ‘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애정 때문에 세옥이 벌인 일의 뒤처리도 해준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독특한 인물과 설정 때문에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며 촬영에 임했다. 덕희와 세옥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인물들이어서 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하지만 설경구와 박은빈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사이코패스란 틀에 가두지 않았다.
박은빈은 “사이코패스로 생각하고 연기하면 이 캐릭터의 진폭을 한정적으로 보게 될까봐 단정하려 하지 않았다”며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유형을 그러모은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특성을 참고해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했다”고 돌이켰다.
설경구는 “사이코패스보다는 자기 분야 외에는 모든 게 어설프고 바보 같은, 두 비정상적인 괴물 같았다”며 “둘만의 감정 소통도 있어서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아역으로 데뷔한 박은빈은 30년 만에 처음 악역을 맡았다.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무인도의 디바’ 등에서 보여준 선한 이미지의 인물을 주로 연기해 왔다.
박은빈은 “세옥이 악역이어서 혹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하진 않았다. 대본 첫 장에 ‘의사인 주인공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이 쓰여 있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다”며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과 행동, 감정들이 많았는데 이 작품으로 해갈된 것 같다.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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