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을 맡았던 문형배(사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을 하루 앞둔 17일 인하대 강연에서 “관용과 자제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강연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리기 전에 잡힌 것으로 문 대행은 고심 끝에 강연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행은 이날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법률가의 길’ 과목 수강생 200여명이 모인 강연에서 ‘최근 몇 달간 분열과 혼란을 겪은 우리 사회가 성장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관용과 자제”라고 답했다. 이어 “관용과 자제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 현재까지 (야권이 주도한) 탄핵소추는 그걸 넘지 않았고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그걸 넘었다는 게 우리 (헌재) 판단”이라고 했다.
문 대행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 대해 “우리 사회가 통합을 고수해 보자. 그것이 탄핵 선고문의 전부”라며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당에 적용되는 권리가 여당에도 적용돼야 하고, 여당에 인정되는 절제가 야당에도 인정돼야 그것이 통합”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 사건 결정문 결론 부분에도 ‘관용과 자제’가 언급됐다. 헌재는 “국회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사건 심리 과정에서 탄핵 인용과 기각을 놓고 재판관 의견이 팽팽히 엇갈려 선고가 늦어지고 있다는 풍문이 많았다. 하지만 심리 막바지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5쪽 분량의 결론 부분 표현을 더 완벽하게 다듬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에는 윤 전 대통령 재임기 야권의 22건 탄핵안 발의, 예산안 삭감, 법안 일방 통과 등이 언급됐다.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문에 야권 잘못을 언급하는 게 맞는지를 놓고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논의를 거친 재판관들의 결론은 타협과 자제 표현으로 결정문에 통합의 메시지를 담자는 것이었다. 한 헌재 관계자는 “야권에도 자제하고 타협하려는 모습이 필요했다는 표현이 들어가 좀 더 나은 결정문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대행은 이종석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지난해 10월 18일부터 6개월가량 소장 대행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후 각종 탄핵심판이 헌재에 몰려들었다. 문 대행과 재판부, 헌재 직원들을 겨냥한 정치권의 근거 없는 공격도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지난 4일 이후에도 재판관들은 다시 사건 심리에 매진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 재판관을 지명한 행위에 대한 가처분 사건 등이 지난 9일 접수된 후 재판관들은 수시로 평의를 열고 논의했다. 문 대행도 주요 사건을 심리 중이라는 이유로 마지막까지 외부 접촉을 최소화했다. 문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퇴임식은 18일 오전 11시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