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알바를 나간 공장에서 동남아 여성을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홍대 근처에서 보는 힙한 티셔츠에 다리에 쫙 달라붙은 레깅스를 입은 걸그룹 옷차림이었다. 출근한 때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그날 공장에서는 유명 아이돌 앨범 포장을 했다. 세련되게 디자인한 종이 박스 안에 앨범 CD, 아이돌 사진, 작은 굿즈 등을 넣는 일이었다. 작업은 쉬웠지만 컨베이어 레일 속도가 빨라 조금 힘들었다. 2시간 작업 후 10분 쉬는 시간을 줬다. 레일에서 떨어져 구석 의자에 앉았는데 옆에 동남아 여성이 우연히 앉았다. 휴대전화로 열심히 SNS를 들여다보며 채팅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멈췄을 때 나는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그녀는 필리핀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말을 잘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25살로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알바 나온다니 외제차를 내줬다고 자랑을 했다. 2살 아기도 있다며 휴대전화를 열어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여줬다. 필리핀 고향에서 온 친정어머니가 지금 집에서 아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기 사진을 보여주는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 동남아 이주 여성들을 보면 많은 한국 사람이 돈 때문에 결혼해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리려고 사랑하지도 않는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거나 시골에 살며 매일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아기를 낳고 집안일에 시달린다거나.
한국 이주민 단체에 봉사를 나가면서 태국에서 온 40대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20년 전 한국에 왔다. 당시에 태국 고향에서는 결혼한 상태로 5살짜리 딸도 있었단다. 남편이 중한 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돈을 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남편과 합의해 이혼을 하고 브로커를 통해 한국 남자와 서류상으로 결혼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왔다.
인천공항에서 서류상 한국 남편을 만나 다음 날 이혼을 했다. 바로 불법 체류자가 돼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20년 동안 일하며 번 돈을 태국 고향으로 보내 남편 병원비를 대고 딸을 학교에 보냈다. 너무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한 탓에 그녀는 골병이 들어 있었다. 내가 만났을 때 그녀는 초췌하고 얼굴이 파리했다. 마음이 아팠다.
고향의 딸을 키우기 위해 몸을 해치며 돈을 버는 이주 여성도 있고, 한국 남자와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 그날 저녁 일이 끝나고 나란히 공장 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차키를 ‘삑’ 눌렀다. 그러자 앞에 있던 반짝이는 외제차 불빛이 번쩍했다. 한국에 온 동남아 이주민들이 사는 모습은 참 다양하다. 오늘 동네 마트에 가면 또 어떤 히잡을 쓴 그녀가 바나나를 고르는 걸 볼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김로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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