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민간 부문 대출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려 경제 성장이 저하되고 금융 안정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동산 불패 신화’로 부동산 투자 수요가 큰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 대출에 집중하는 관행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해 말 전체 민간 대출 중 부동산 관련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은 3일 ‘부동산 신용집중: 현황,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공동 콘퍼런스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신용 규모는 지난해 말 1932조5000억원으로, 개인과 기업을 합친 전체 민간 신용의 49.7%에 달했다.
두 기관 지적처럼 최근 10년간 부동산 관련 빚은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2014~2024년 전체 부동산 신용의 연평균 증가율은 8.1%에 이른다. 매년 100조5000억원씩 늘어난 셈이다. 2018년 이후 정부의 가계부채 규제 정책으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의 부동산 대출 비율은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기업의 부동산 대출은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은 GDP 대비 기업의 부동산 대출 비율이 10%대에 그쳤지만 한국은 20% 이상이다.
부동산 부문에 자금이 편중되는 것은 가계·기업의 부동산 투자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위해 담보대출 위주 영업을 펼쳐온 결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기업대출에 비해 부동산 담보대출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김형원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은 “금융권이 안전한 담보대출에 집중하면서 금융의 본연 기능인 상환능력과 사업성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 자금 공급이 저해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규제도 은행의 부동산 신용 확대 유인으로 지적됐다. BIS 규제는 은행이 대출을 내주면 일정 비율 이상의 자기자본을 확충하게 한다. 부동산 담보 대출은 일반 기업대출에 비해 부실 위험이 낮게 평가돼 보다 적은 자본을 보유해도 된다.
시중의 돈이 부동산에 집중되면 잠재력이 높은 제조업 등이 자금 공급을 원활히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필요한 곳에 제때 돈이 흘러가지 못해 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진다. 일례로 지난해 말 한국의 부동산업 대출 집중도는 2위인 숙박·음식업의 2배 이상인 반면 자본생산성은 전업종 중 최하위다.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 위험이 크게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물 경기가 악화하면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떨어지면서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금감원이 중소금융사를 부동산 관련 대출 편중이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으로 나눠 영업실적을 비교한 결과 편중이 높은 그룹의 부실채권비율·총자산이익률(ROA)이 경기변동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신용의 부동산 편중 현상을 단기간에 해소할 수는 없다”며 “주택금융과 정책금융을 포괄하는 신용공급 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신용 증가를 적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자본규제를 개선해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 취급유인을 억제한 후 생산적인 기업대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제시됐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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