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당신은 한국서는 베스트셀러 작가고 인도네시아선 종합대학 설립자다. 범인(凡人)이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시종일관 ‘하나님이 다 한 일’이라고 하니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기독 출판계 ‘공전의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내려놓음’ 저자 이용규(58) 선교사가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한인 목회자 세미나 강연 중 받은 질문이다. 이 선교사는 성경 인물인 아브라함이 백 세에 아들을 얻은 이야기로 응수했다. “주변서 백 세 득남의 비결을 묻을 때 아브라함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질문했던 이들은 건강 비법 등을 예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님이 그분의 약속을 이뤘습니다’ 외엔 없지 않을까요.”
신간 ‘약속’(규장)은 저자의 20여 년 선교 사역을 ‘하나님의 언약(약속)’이란 키워드로 엮어낸 책이다. 몽골에서 8년, 인도네시아에서 13년간 선교사로 살아온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고향과 친족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자기 삶의 궤적을 발견한다. 저자 역시 선교사로 살기로 하면서 기존에 쌓아온 경력과 전공 분야, 정착한 지역을 떠났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일방적으로 약속하고 그 과정을 믿음으로 견디도록 요구하는 것도 같다. 아브라함에겐 노년에 득남하는 일이, 그에겐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가 있는 인도네시아에 기독 대학을 설립하는 일이 그러했다. 몇 달간의 기도 끝에 이 일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확신한 저자는 몽골에서 쌓은 기반을 내려놓고 2012년 인도네시아에 입국했다.
그는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로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고유한 약속을 준다”고 말한다. 선교사 등 사명을 받은 일부만 약속을 받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는 그 약속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계시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저자도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해 자카르타국제대(JIU) 설립을 시작했지만 갖은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기도로 그분의 뜻을 재차 물었다.
당시 그가 현지 대학 설립을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은 12개가 넘었다. 체류 허가와 재단 운영, 교원과 자녀를 위한 기독 초·중·고교 설립 인가 취득, 캠퍼스 건축과 현지 인력 확보, 후원금 마련….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현지 교육부와 건강 문제도 저자의 발목을 잡았다. 문제의 돌파를 위해 기도하던 중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약속받은 사람의 할 일은 약속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일의 성취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받은 약속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기대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성패를 맡기되 주어진 일엔 최선을 다하는 이 태도를 그는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정의했다.
현지 법과 제도가 바뀌고 건강 문제도 자연 치유되는 등의 기적을 저자가 경험하는 동안 JIU는 회계학과 영어영문학, 정보시스템학과 등 6개 학과를 갖춘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한국어학과와 경영학과, 기계공학과는 신설을 앞두고 있다. 사범대와 의과대, 예술대 설립도 계획 중이다. 현지 기독교인 중 빈민 가정 청소년과 아프간 난민 자녀에겐 장학 혜택도 준다. 이들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기독 인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내려놓는 삶에 있어 중요한 자세는 ‘받아들임’, 곧 수용임도 역설한다. 그는 이전작 ‘내려놓음’이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종종 이 책 집필을 후회했다. 자기 삶이 내려놓음의 전범(典範)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이를 떨치는 대신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다. “하나님이 허락한 인생의 부담은 성과가 아닌 성장이 목적”이란 걸 깨달아서다. ‘일의 성패는 하나님께 있으니 일견 망한 것 같아도 그 안의 소망을 준비하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20여 년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미답의 땅으로 인생 항로를 틀어온 저자가 담담한 필치로 기록한 ‘21세기 선교 행전’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사 42:3)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하는 책은 불안정한 정국과 경제 상황 등으로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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