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4일 유산취득세 도입 방침을 밝히며 “낡은 조세제도를 그대로 두면 구습(舊習)이 돼 국민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한 뒤 상속인들이 나눠 내는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경우 유족 개개인이 각자 받은 재산에 따라 세금을 내게 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날 “피상속인 중심의 과세 체계를 상속인 중심으로 옮기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낡은 상속세제를 개편하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2022년부터 유산취득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24개국 중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한국과 미국 영국 덴마크 4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20개국은 모두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현행보다 세 부담이 낮아진다. 현재 30억원의 상속재산을 자녀 3명이 10억원씩 물려받을 경우 현행 유산세 체계로는 8억1480만원이 과세돼 자녀 1인당 2억7160만원을 내야 한다. 반면 유산취득세가 적용되면 총세액은 5억5290만원으로 줄고 1인당 부담액도 8730만원씩 줄어든다. 상속 금액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 체계에 따른 결과다. 유산세 방식은 세수 확보가 쉽고 행정 절차가 편리하지만 상속인의 세 부담이 높고, 유산취득세는 조세 행정이 복잡한 반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낮아지는 특징이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행 체계를 기준으로 유산취득세 개편 방안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산취득세 전환 추진은 상속세 부담이 점차 중산층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2023년 상속세 과세자와 과세미달자를 합친 피상속인(사망자) 29만2545명 중 6.82%(1만9944명)가 과세자였다. 2022년(4.53%) 대비 1년 새 2.29% 포인트 상승했다. 상속세 과세 비율은 2008년 처음으로 1%(1.04%)를 넘긴 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본격화한 2018년 이후 매년 상승 추세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개편 방안을 발표하며 상속세제 개편안도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연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상속세제는 74년 만에 대전환을 맞게 된다. 유산취득세 전환 논의 과정에서 배우자·자녀 등 상속인별 공제한도를 새롭게 설계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산취득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관련 시스템 정비 등으로 실제 시행 시기는 2027년 이후가 될 수 있다. 심충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산취득세 도입이 단순히 1인당 세금을 줄여준다는 수준을 넘어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에만 과세한다는 상속세의 대원칙을 구현하는 역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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