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향해 출격…“경기하는 모습 통해 하나님 전하고 싶어”

스포츠는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선수들이 모여 경합을 벌이는 한 판의 경기, 그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치열한 승부 속에서 선수들은 한계를 뛰어넘고, 때론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스포츠가 ‘한 편의 드라마’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경기장의 환호와 화려한 조명 뒤엔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 승리를 향한 무한 경쟁, 지도자와의 갈등, 동료와의 관계 문제 등 수많은 위기가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경험한 선수들은 절망과 회복,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서 신앙을 더욱 깊이 경험하곤 한다.

많은 선수가 경기장에서의 승리를 넘어 인생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이유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던 순간에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손길이 바로 하나님이었음을 증언한다. 부상의 고통 속에서, 경기에서의 극적인 역전승 속에서, 또 선수 생활 이후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시련과 영광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들의 어제와 오늘에는 감격의 순간을 팬들에게 전했던 감동과 미래를 향한 도전이 어려 있었다.



2018년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화 같은 서사와 함께 깜짝 메달을 선사했던 이들이 있다. 썰매의 불모지에서 ‘한국판 쿨러닝’을 일궈내며 은메달을 목에 건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이다. 마땅한 훈련 시설이 없어 아스팔트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며 훈련을 하고, 해외 전지훈련에선 비용 문제로 썰매를 운송하지 못해 외국 선수들의 장비를 빌리는 설움까지 겪어야 했던 이들이 한국 봅슬레이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건져 올린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크리스천들에겐 당시 선수들 목에 걸린 메달보다 더 빛나고 뭉클한 장면이 있다. 4인의 국가대표 중 드라이버(썰매를 조종하는 역할)를 맡은 김동현(38) 선수가 경기 직후 헬멧을 쓴 채 썰매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했던 모습이다. 지난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현은 “처음 썰매에 오를 때부터 마음속 꿈으로 새겨왔던 일을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꿈은 ‘경기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8세 소년 시절 갑작스레 찾아온 청각 장애도, 발목이 부러지고 심한 허리 부상까지 겹쳐 9개월 넘게 피땀을 흘려야 했던 재활 훈련도, 장애를 딛고 국제무대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비인기 종목이란 현실 속에 감당해야 했던 생활고도 꿈을 향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는 15년 동안 헬멧에 달았던 태극마크를 떼고 2년 전 봅슬레이를 내려왔다. 이후 후배 선수들의 재활을 돕는 트레이너, 일반인들이 국가대표처럼 훈련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약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고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의 선수위원 등으로 커리어를 확장해왔다.

명함 속 직함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히 하나다.

그는 “국가대표가 되기 전부터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신 28:1)이란 말씀을 붙들고 살아왔다”며 “최고의 극작가이신 하나님이 앞으로의 삶을 통해서도 더 드라마틱한 시나리오를 보여주실 것”이라며 웃었다.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재성(32·마인츠)은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바라볼 나이에도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올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의 답은 늘 같다. “부상 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완주하는 것.” 선수에게 부상은 모든 걸 멈추게 만들고, 홀로 멈춰 있는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질 만큼 괴롭기 때문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통증을 참고 뛰었다. “힘들게 얻은 소중한 기회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상으로 경기에 빠지면 경쟁자에게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2014년 아시안게임 북한과의 결승전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헤딩 후 착지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어깨가 땅에 충돌하며 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대표팀은 간절히 원했던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는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복귀 후에도 부상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 그를 짓눌렀다.

이재성은 마인츠에서 뛰는 동안에도 10개월간 이어진 시즌 내내 팀 성적, 개인 성적 그리고 주전 경쟁 속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신앙이다. 가족과 신앙 선배들의 중보기도 그리고 매일 묵상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이 그에게 어려운 순간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 줬다.

그는 독일에서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인츠의 한인교회에 다니며 경기가 없는 날에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청년부예배에 참석한다. 또한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앙을 공개적으로 나누고 있다.

이재성은 “시즌을 치르다 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버티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회뿐만 아니라 매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운동선수들의 신앙 고백은 연예인들의 시상식 수상 소감 이상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의 모판을 되새길 기회가 되고,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치명적 부상이나 부정적 이슈로 인해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동료 선후배들을 숱하게 봐 온 운동선수들은 그 고백의 농도도 진할 수밖에 없다.

아티스틱스위밍 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영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은 “폭력이나 가혹행위 같은 인권침해, 승부 조작 같은 비리 행위 등 외부 요인 때문에 선수 생명이 끊기기도 한다”며 “신앙을 기반으로 한 긍정적 사고방식은 선수들이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이나 실패에 직면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절망적 순간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게 하는 회복력, 과정으로부터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는 원동력이 된다”며 “무엇보다 선수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목표의식을 찾도록 돕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최기영 박효진 기자 ky710@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