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찾은 전남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 내부는 1000~1300℃로 가열된 슬라브(철강 반제품)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주황빛으로 달아오른 슬라브에는 검은 이물질(스케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품질을 떨어뜨리는 스케일을 제거하기 위해 고압의 물줄기를 쏘자 공간을 찢는 굉음과 함께 희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말끔해진 슬라브는 철제 롤러 위를 미끄러지며 압연기에 의해 눌리고 늘여졌다. 담뱃갑처럼 각지고 두툼했던 3m 길이의 슬라브는 점차 얇은 40m짜리 제품으로 변모했다. 압연한 제품을 급속 냉각하는 공정은 고망간강(망간을 많이 넣은 철강)의 물성을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이유로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압연·냉각 공정은 전 세계에서 포스코만이 보유한 고망간강 기술을 구현하는 요체다. 정영덕 포스코 리더는 “강철에 망간을 첨가하면 소재 특성상 부서지기 쉬워지는데, 포스코가 철강 분야에서 축적한 압연·냉각 경험을 바탕으로 망간을 포함하면서도 강도와 내마모성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고망간강은 포스코가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수송관용으로 독자 개발한 신소재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세계 LNG 시장의 확대가 본격화하며 고망간강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LNG 인프라용 소재였던 니켈·알루미늄 합금강(9% 니켈강)은 핵심 소재인 니켈의 수급과 가격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포스코는 지난 2008년부터 조달이 쉽고 가격이 싼 망간을 활용한 제품으로 9% 니켈강을 대체하겠다고 나섰다. 포스코는 지난 2013년 철에 22.2∼25.5%의 망간을 첨가하고도 9% 니켈강과 성능은 같고, 가격은 30% 저렴한 고망간강을 개발해냈다.
포스코이앤씨가 건설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제1LNG터미널 6개 탱크 중 5호기(2019년 준공), 6호기(2024년 준공)에는 포스코의 고망간강이 들어갔다. 현재 약 1조원을 투입해 짓고 있는 제2LNG터미널(2026년 준공 예정) 7·8호기도 마찬가지다. 이날 찾은 7호기 건설 현장엔 이미 높이 84m, 지름 39m의 돔 형태 콘크리트 외벽이 우뚝 서 있었다. 완공에 필요한 고망간강 총량의 약 30%가 용접을 거쳐 LNG 저장탱크 내벽에 붙어 있었다. 주성철 포스코이앤씨 차장은 “5·6호기에 처음 고망간강을 적용해 시공할 땐 소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9% 니켈강 수준으로 용접 불량률을 낮췄다”고 말했다.
원래 광양 제1LNG터미널 5·6호기에는 4호기까지 썼던 9% 니켈강을 도입할 예정이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그룹사 시너지를 고려해 고망간강으로 방향을 틀었다. 장 회장은 과거 포스코 사장 시절 한화오션 최고 경영진을 직접 만나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 사용을 설득하기도 했다. 한화오션은 현재까지 총 36척의 고망간강 적용 선박을 수주했다. 이순기 포스코 수석연구원은 “에너지뿐 아니라 초대형 변압기, 자기부상 열차, 방산 등 다양한 분야로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매진 중”이라고 말했다.
광양=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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