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제기 부정선거 4대 의혹… 시스템 상 성립할 수 없는 주장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계엄 선포 배경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2일 담화에서 “선거 관리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고 주장했고,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도 “다량의 가짜 부정 투표용지” 등을 언급하며 부정선거론에 불을 지폈다.

윤 대통령 측 주장은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2023년 국가정보원이 선관위 시스템에 취약점이 있었다고 발표한 것, 윤 대통령 측이 반복 제기하는 중국 개입설, 별개 사안인 선관위 채용비리 의혹 등과 맞물려 이 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실물 투표지를 수검표하고, 각 정당 추천 참관인이 일일이 확인하는 현행 시스템상 부정선거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과 대법원의 판단이다.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이 음모론 살포에 앞장서면서 부정선거론이 사회병리 현상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측이 제시하는 부정선거 의혹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선관위 서버 해킹을 통한 투표 결과 조작 가능성’과 이른바 ‘일장기 투표지’ 등 가짜 투표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사전투표 조작론’(QR코드)과 ‘중국 배후설’ 역시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꾸준히 제기해 왔다. 국민일보는 주장의 사실관계를 따져봤다.



부정선거 의혹의 핵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정인이 선관위 서버 해킹 등을 통해 사전투표 수를 부풀린 뒤 위조 사전투표지를 다량 투입해 개표 결과를 조작했고, 개표 단계에서도 서버 조작이 있었으며, 후속 소송의 검증에 대비해 다량의 당일 투표지를 위조해 투입했다는 것이다. 즉 선관위 서버 해킹이 핵심 전제다.

윤 대통령은 12·12 담화에서 “국정원이 (선관위)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2023년 10월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언제든 해킹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힌 것이 근거다.

그러나 윤 대통령 주장에는 보안 점검이 일종의 ‘모의 해킹’이었다는 전제가 빠져 있다. 정상적 보안 환경에서 해킹을 시도한 게 아니라 선관위가 접근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한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점검에서 실제 해킹 흔적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 측이 증인 신청한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은 지난달 11일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 실제 침입 흔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점검한 5% 내에서는 없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선관위가 나머지 점검은 불응했다”고 주장했지만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핵심 장비 5%만 선별 점검한 것이라 사실과 다르다.


애초 현장에서 실물 투표지를 수검표해 서버 해킹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정선거가 성립하려면 전산 조작과 함께 위조 투표 용지 구입, 인쇄, 날인과 함께 투표지 보관상자 바꿔치기가 필요하다. 전산을 조작해도 위조 투표지를 그에 맞춰 바꿔치기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2022년 기각한 민경욱 전 의원 선거무효 소송에서 “투개표 전반에 걸쳐 각 정당 추천 참관인 등 수많은 인원이 참여한다”며 “개표 상황을 조작하려면 고도의 해킹 능력, 대규모 조직이 필요한데 원고 측은 실행주체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당시 총선 때 사용된 기계를 일일이 분해하며 외부 해킹 가능성을 반박했다.


도장이 뭉개진 이른바 ‘일장기’ 투표지와 접힌 자국이 없는 ‘빳빳한 종이’(형상기억 종이 의혹)가 투표장에서 발견됐다고 윤 대통령 측은 주장한다. 앞서 민 전 의원 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재검표 과정에서 도장이 뭉개진 294표를 무효표로 분류했지만 “정규 투표지에 도장을 찍는 과정에서 뭉개진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법원 감정 결과에서도 자체 잉크가 주입된 투표관리관 도장에 관리관이 적색 스탬프 잉크를 추가로 묻혀 날인했을 때 뭉개진 형태의 투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빳빳한 투표지 논란은 ‘형상기억 종이’ 논란으로 확산된 주장이다. 21대 총선 이후 논란이 일자 선관위는 “원상 복원 기능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는 영상을 공개했다. 복원력이 강한 종이라고 설명한다는 취지였지만 거꾸로 부정선거론자들이 ‘형상기억 종이가 있느냐’고 공세를 펴는 빌미가 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현미경으로 감정한 결과 “원고 측이 ‘접힌 흔적이 없다’고 선별한 투표지 중 상당수에서 실제로는 접힌 흔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해당 투표지들은 투표소에 있던 프린터로 출력된 사실도 증명됐다. 대법원은 2021년 9월 22시간에 걸쳐 12만7000여표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짜 투표지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투표용지를 감정했던 신수정 충북대 목재종이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 요구대로 제가 아는 과학지식을 동원해 감정했다”며 “(문제가 된 투표지와) 기존 사전·당일 투표용지가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QR코드는 보수 유튜버 등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다. 윤 대통령 공소장에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김용군 정보사 예비역 대령에게 “특히 QR코드 관련 증거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이 적시됐다.

선관위는 QR코드를 통해 사전투표지에 선거구별 일련번호를 부여했다.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은 일련번호가 찍힌 사전투표지가 많다는 게 부정선거론 핵심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민 전 의원 측이 제공한 프로그램을 통해 4만5000여장의 사전투표지를 모두 판독했는데, 선관위가 부여한 일련번호 이외 번호가 기재된 사전투표지는 한 장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최후 진술에서 “투표 결과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통계학과 수리과학적 논거 등이 있다”며 ‘대수의 법칙’을 뜻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는 본투표와 사전투표 모두 같은 모집단인데 득표율 격차가 크게 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대표적인 통계적 오류에 해당한다. 득표율 차이는 사전투표 유권자와 본투표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역, 연령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불신해 득표율이 다르게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사전 투표자와 당일 투표자는 전체 모집단이 두 개로 따로 쪼개져 있는 것”이라며 “대수의 법칙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측은 사전투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선관위 서버에서 통합선거인명부 원본을 검증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대법원은 이미 민 전 의원 소송에서 통합선거인명부와 각 투표소 선거인명부 열람을 실시했다. 100세 이상 고령자 등의 경우 일부 불일치 사례가 발견됐지만 대법원은 부정선거를 증명하는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거관리 미흡을 넘어 위조 투표지 투입 여부 등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해킹 등 주장이 나오지만 선관위 서버를 검증하는 게 의미가 없다. 우리는 실물 투표지에 기반한 투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은 ‘중국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도 탄핵심판에서 제기해 왔다. 윤 대통령 측은 21대 총선 당시 선관위가 중국인 개표 사무원을 채용한 사실을 문제삼기도 했다. 당시 논란이 된 개표사무원 6명 중 5명은 한국 국적, 1명은 중국 국적의 대한민국 영주권자로 모두 의용소방대원들로 확인됐다. 하지만 중국인 사무원이 부정선거에 관여했다는 직접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은 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한 가짜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가짜뉴스의 주요 내용은 ‘계엄군과 주한미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체포한 중국인 간첩 99명을 주일 미군기지로 압송했다’는 것이었다. 보도 출처는 ‘미군 소식통’이었다. 그러나 선관위와 주한미군이 공식적으로 해당 보도를 부인하는 등 ‘가짜뉴스’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주한 중국대사관 난입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지지자 안모씨는 해당 매체 취재원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미국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했다’고도 주장했는데 경찰은 그가 실제로 미국에 다녀온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재현 신지호 성윤수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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