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이달 속속 시행되며 글로벌 무역전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 달간 유예했던 ‘캐나다·멕시코 25% 관세’와 ‘중국 10% 추가 관세’가 4일(현지시간)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이 직접적인 사정권에 포함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12일)와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발표도 초읽기에 돌입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목재 수입품 등에 대한 ‘안보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한국산 구리 제품·싱크대까지 관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대미 수출 비중이 큰 반도체나 자동차에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의 수출에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첫 번째 통상 시험대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부과 여부가 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산 철강은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이후 연 263만t까지 대미 수출에 무관세 쿼터가 적용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알루미늄에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한 상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일 “무관세 쿼터를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산 철강을 썼다고 의심받는 다른 수출품도 여파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트럼프 2기 핵심 인사들과 만나 한국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지난 26~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잇달아 면담했다.
안 장관은 미국의 관세 대상에 한국은 예외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미국 측은 “정해진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안 장관은 28일 미 특파원 간담회에서 “관세 조치와 관련해 우리 기업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면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미국에서 여러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 계속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달 중 본격적인 실무 협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달 초 발표될 트럼프 2기의 상호 관세(상대국 관세에 맞춰 미 관세 조정) 방침도 관건으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모두 고려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한·미 FTA로 양국 간 99% 품목이 무관세로 거래되지만 부가가치세나 산업보조금,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이 문제가 될 경우 한국도 상호 관세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다만 상호 관세 타깃은 중국과 유럽연합(EU), 멕시코, 베트남 등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보다 중국과 멕시코, EU가 높은 (상호 관세) 세율을 적용받을 것”이라며 “한국산 반도체도 보조금 규모를 고려하면 중국, 유럽, 일본보다 낮은 관세율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일 “미 정부 내부에선 4월 2일까지 시간이 촉박해 상호 관세의 전면적 시행까지 6개월 이상 더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25% 수준의 ‘품목별 관세’는 국내 수출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최대 10조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상호 관세는 경쟁국에 불리하게 작용해 한국에 상대적 호재가 될 수 있지만 품목별 관세는 우리 기업에 치명타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품목별 관세 언급은 구리·목재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원목·목재 등의 수입에 따른 국가 안보 영향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국산 목재로 제품을 만들고 다시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싱크대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백악관 당국자는 “우리가 수출한 원목이 (제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문제가 있다”며 “한국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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