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하거나 표현을 할 수 없는 신생아나 돌 이전의 영아는 보호자의 말과 진찰 소견으로 상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열이 나면 목이 부었는지, 숨소리는 괜찮은지, 요로감염은 아닌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진찰뿐만 아니라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들에게는 가급적 침습적인 검사는 피한다. 가령 아프게 할 수 있는 피검사라든지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변 패치를 붙이고 1시간씩 기다리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너무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필요하면 의사 판단에 따라 꼭 해야 한다.
아이들은 진찰할 때도 증상을 얘기하는 한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곳을 다 보아야 한다. 최근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유행했는데 이 질병은 복통과 두통도 많이 동반했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고 온 아이를 청진하면 폐렴 소리가 많이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약 이런 아이에게 장염 치료만 했더라면 폐렴이 더 악화되는 상황이 됐을 수도 있다. 예전에 미열을 동반하며 보챈다고 해서 온 아이가 있었다. 중이염일까 아니면 장중첩증일까 궁리하며 진찰하던 중 아이를 만지는데 너무 자지러지게 우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X선 검사를 했더니 뼈의 골절이 발견돼 보호자도 나도 놀랐던 적이 있었다.
비단 어린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초·중등 학생들 중에서도 두통이 있거나 배가 아파 온 경우 의학적으로 하나씩 물어가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10명 중 1~2명꼴이다. 보호자들도 보통 초등생 정도 되면 아무래도 어릴 때보다는 신체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도가 조금 적기 때문에 정확하게 얘기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의학적인 질문보다 아이들이 알기 쉽고 단순하게 질문을 해줘야 한다. “머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니?” 같은 질문보다는 “욱신욱신 아프니? 콕콕 찌르는 듯이 아프니? 뭐가 때린 것 같애?”라는 식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때로는 선생님이 해결해 줄 테니 얘기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면서 조금 기다려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아과 의사들은 진료실 밖에서는 다정한 모습이지만 진료실에서는 베테랑 형사가 된 느낌이다. 보호자들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다 증거 수집이고 아이의 표정 하나 몸짓 한번까지 다 체크해야 한다.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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