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생활용품 소비재 ‘선택과 집중’… 끊임없는 학습과 혁신의 기업

혁신과 나이는 대부분 반비례한다. 혁신으로 성장한 기업도 시간이 경과하면 기존 경쟁력을 지키는 데 몰두하다 환경 변화로 무너지곤 한다. 대표적 혁신기업이었던 코닥, 제록스, 인텔 등이 최근 몰락한 것은 강점을 지키려다 혁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훨씬 오래됐지만 아직 끊임없이 전방위 혁신하는 기업이 P&G다.


동서지간 이민자였던 윌리엄 프록터와 제임스 갬블이 1837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창업한 이래 P&G는 생활용품 소비재라는 핵심역량 사업에 철저히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나서 비누, 샴푸, 치약, 세제, 기저귀, 화장품 등으로 계속 진출하며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매일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계속 다시 상상한다’는 슬로건은 P&G의 핵심역량 분야를 명확히 보여준다.

P&G는 모든 상품에서 세계 1위와 최초를 목표로 한다. 1879년 세계적 인기 상품 아이보리 비누를 개발했고, 1911년 식물성 식용유 크리스코를 출시했으며, 1932년 합성세제 드레프트를 선보였고, 1935년 세제류 샴푸 드렌을 개발했는데 모두 세계 최초였다. 또 1946년 초강력 세제 타이드, 1955년 불소함유 치약인 크레스트, 1960년 액체 섬유유연제 다우니, 1961년 비듬방지 샴푸 헤드앤숄더와 종이기저귀 팸퍼스, 1972년 티슈형 섬유유연제 바운스, 1998년 섬유탈취제 페브리즈 등도 모두 세계 1위이자 최초였다. P&G는 자신의 핵심역량 분야이기만 하면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인데 1980년 맥스팩터의 화장품 브랜드를 인수해 SK-Ⅱ를 출범했고, 1985년 영양제 함유 샴푸 팬틴을 인수해 세계 1위 브랜드로 키웠으며, 2005년 세계 면도기산업 1위인 질레트를 인수했고, 2006년 세계 1위 칫솔 브랜드 오랄B도 인수했다.

P&G의 상품 포트폴리오 변천사는 이익만 되면 물불 가리지 않는 문어발 기업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은 정반대로 핵심역량에 대한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 본질이다. P&G가 출시한 무수한 상품은 예외 없이 생활용품 소비재라는 동일한 핵심역량에서 나온 것이다. 사업 분야가 아무리 다각화돼도 동일한 핵심역량을 활용했기 때문에 대부분 브랜드가 글로벌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P&G의 경영시스템은 항상 전방위적으로 혁신을 선도했다. P&G는 1890년 주식회사 형태를 도입해 현대적 기업 모델로 전환을 이끌었다. 1930년 리처드 듀프리가 최초의 비가족 회장으로 취임해 본격적인 전문경영인 시대의 문을 열었고, 1930년대에 이미 국제화 전략을 적극 실행해 영국, 유럽, 필리핀 등에 진출했다.

조직 구조도 끊임없이 혁신했는데 1890년 본격적 기업 연구개발부서인 중앙연구개발실을 설립했고, 1924년 최초의 시장조사부서를 개설했다. 특히 브랜드 수가 계속 증가하자 1931년 브랜드 중심의 사업운영 시스템을 발족해 브랜드 담당자가 손익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했으며, 1943년 사업부제 구조로 완전히 전환했다. 이때 각 사업부가 독립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만 연구·개발과 제조, 광고는 전사 수준에서 공유하도록 했는데 시대를 앞선 경영혁신이었다.

마케팅과 홍보에서도 P&G는 1923년 식용유 홍보를 위해 라디오 요리쇼를 최초로 방송했고, 1920년 도매업체를 통한 기존 영업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소매업자 직판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1939년 최초의 TV 광고를 통해 아이보리 비누를 홍보했는데 세계 최초 TV 방송이 시작된 지 불과 5개월 후였을 정도로 혁신 채택에 선도적이었다.

21세기 들어 무경계 상시 혁신경쟁 환경이 도래하자 P&G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기존 연구·개발에서 ‘연결+개발’로 바꿨다. 아무리 내부 역량이 풍부한 대기업도 결코 혼자서는 새로운 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므로 내부 역량과 다양한 외부 역량을 개방적으로 연결시켜 신속하게 다양한 신상품을 개발하겠다는 개방형 혁신을 선포한 것이었다. 최근에도 P&G는 미래 트렌드인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의 실행을 위해 고객 기준 매트릭스 경영을 시도하고 있다. 또 급발전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해 2023년 IBM과의 협력을 통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술을 불량 탐지에 도입해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P&G의 경영시스템은 특정 모델에 고착되지 않고 시대별로 최첨단 트렌드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즉 상품과 사업분야는 핵심역량 중심으로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지만 경영시스템은 정반대로 상시 전방위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20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킨 P&G이지만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욕이나 판단 오류로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있고 21세기 들어 성장 둔화로 최고경영자(CEO)가 자주 교체되며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P&G의 차이점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판단되면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적극 수정한 것이다. 예를 들면 1위 상품인 지프 땅콩버터와 프링글스 감자칩을 2001년과 2012년 각각 매각했는데 핵심역량 분야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집중투자했던 제약사업도 핵심인 생활용품 소비재와 거리가 있다고 판단되자 2010년쯤 완전 철수했다. 즉 P&G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조직인 것이다. 어떤 기업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실수의 겸손한 인정과 과감한 수정이라는 학습역량은 초장기 초우량기업의 필수요건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겸손한 기업은 윤리적이다. P&G에는 ‘뉴욕타임스 룰’이라는 독특한 윤리기준이 있다. P&G 직원은 자신의 행동이 다음 날 아침 뉴욕타임스 1면에 보도되어도 결코 한 점의 부끄럼도 없어야 한다는 규범이다. P&G 직원이 심각한 손해를 감수하고 뇌물, 탈세, 편법 등 비윤리적 유혹을 거부한 사례는 매우 많다. 그 결과 P&G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 꾸준히 상위에 머물렀다. P&G가 창업 이래 보여준 이런 모습을 앞으로도 유지한다면 200년 기업을 넘어 300년 기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경계 없는 승자독식 초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 환경에서 글로벌 선두로 다시 한번 도약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도 깊이 자성해야 할 지점이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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