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남 순천 참샘마을에서 태어났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내가 어릴 때는 승주군에 속한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버스도 안 다녀서 어쩌다 순천 시내에 가려면 7~8㎞는 걸어야 했다. 더구나 오가는 길이 평지가 아닌 산길이고 작은 강도 있어서 시내 학교까지는 참 멀게 느껴졌다.
당시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나를 인정해 주셔서 매산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해주셨고, 기적처럼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학비를 안 내고도 중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선물로 중고 자전거를 사주셨다. 그렇게 나는 순천 시내의 학교까지 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로 통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농구부에 들어갔다. 중3 때였다. 농구부 선발 기준은 ‘달리기 선착순 10명.’ 초등학교 6년 동안 하루 두 시간 이상 뛰다시피 다닌 데다가 중학생이 된 뒤부턴 매일 두세 시간씩 자전거로 통학을 했기에 하체 근육과 달리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 농구부에 들어가니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집이 순천 시내라 웬만하면 저녁을 먹을 즈음 집에 도착했겠지만 내가 집에 도착할 때는 한참 컴컴해진 뒤였다. 그때는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 등에 불이 들어왔다. 게다가 중고 자전거 아닌가. 힘에 부쳐 속도가 줄면 그만큼 빛이 흐려졌다.
한 번은 하굣길에 비가 내렸다. 집까진 아직 갈 길이 먼데 배는 고팠다. 설상가상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전조등 필라멘트가 수명을 다했는지, 빗물이 스며들어 고장이 났는지 전조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은 내가 나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을 집어삼켰다. 전조등이 꺼져 멈춰 선 곳은 나무가 빽빽한 고갯길 중턱. 집에 도착하려면 온 거리 만큼은 더 가야 했다.
무서웠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참 많았다. 빈집에 귀신이 살고, 한적한 고갯길엔 도깨비가 숨어 있다가 애들을 잡아간다며 동네 형이나 어른들이 겁을 주곤 했다. 마침 그 고갯길 옆으로 저수지가 있었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멈춘 그 길은 귀신이 보인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오금이 저리고 입은 바짝 타들어 갔다. 눈앞이 캄캄했다. 실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브레이크를 꽉 잡고 그 자리에 그냥 서버렸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무서운 상상이 들어찼다. 귀신이나 도깨비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 잡아갈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무도 없는 그 캄캄한 밤, 비 내리는 시골길에서 무서워 소리도 못 낸 채 이 말만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버지, 아버지…. 종만이 좀 살려 주세요.’ 몸이 떨렸다. 그때 멀리서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종만아, 종만아, 너 어디냐.”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귀에 익숙했다. 내 기억에 선명히 각인된 그 음성. 아버지였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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