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업계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눈에 띄게 감소한 데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실적은 바닥을 쳤다. 업계 영업손실은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고환율 등 영향으로 올해 전망도 어둡다. 면세산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69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다. 2023년 영업이익은 224억원이었다. 신라면세점이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1275억원) 이후 4년 만이다. 같은 기간 신세계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도 각각 359억원, 288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롯데면세점은 실적 공시 전이지만, 마찬가지로 전망이 좋지 않다.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이미 922억원에 달한다. 4분기에도 적자 기조가 지속했다. 연간 1000억원대를 넘어서는 수준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면세점 4사의 영업손실액을 합하면 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매출이 전년 대비 2.6% 감소한 현대백화점면세점을 제외하고, 신라·신세계면세점은 매출이 각각 11.9%, 4.7% 늘었다. 그런데도 영업손실액이 증가한 것은 결국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내 면세점 시장 상황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 한류가 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으로 중국 관광객이 한국을 대거 찾았다. 인천국제공항은 면세점을 확장하는 등 면세사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2010년대 초반 한국 면세점 시장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 세계 매출 1위 규모로 성장했다. 면세 사업은 ‘노다지’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유통 대기업들은 면세점 유치에 사활을 거는 치열한 경쟁도 벌였다.
정부가 제동을 걸 정도였다. 2012년 당시 정부는 면세사업을 대기업이 독식할 우려가 있다며 특허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5년 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이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면세점 특허 남발에 따른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하면서 경쟁력 약화 조짐을 보였다.
업황이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즈음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 정부가 한국 여행을 제한하는 등 이른바 보복성 조치를 시행하면서다.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면세점업계는 크게 휘청였다. 결정타를 가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이었다. 최악의 불황에 빠진 면세점업계는 매출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만 수년의 시간을 소요했다.
여행 트렌드 변화도 업계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면세점이 한창 흥하던 시절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명품과 화장품을 싹쓸이하며 매출에 기여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등이 발달하며 개별 여행객이 늘었다. 이들은 쇼핑보다 문화를 즐기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행객이 많아져도 면세점으로 끌어당길 요인은 부족한 상황이다.
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판매 부진, 인천국제공항에 지급하는 임대료 부담, 중국 보따리상에 지급하는 높은 수수료 등도 낮은 영업이익의 원인으로 꼽힌다.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의 경우 희망퇴직 시행에 따른 일회성 비용도 지난해 실적 악화 요인이 됐다.
올해 전망도 어두운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등 여파로 지난해보다 원·달러 환율이 더 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되는 분위기다. 리모델링 중인 인천공항 임시 매장이 공사를 마치고 정규 매장으로 속속 전환해 그동안 누려온 임대료 감면 혜택이 종료를 앞둔 점도 악재다.
면세점업계는 단독·차별화 상품을 개발하거나 팝업스토어를 열면서 관광객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만으로 수익성이 개선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객단가 높은 명품매장이 올해 차례로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하는 등 점진적으로 수익성을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도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 특성상 단기간에 업황이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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