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10명중 4명이 난청… 보청기 건보 적용하라”

초고령 사회 진입과 맞물려 대한이과학회 등 귀 건강 관련 학계가 ‘노인성 난청’의 청각 재활에 필요한 보청기의 건강보험 적용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65세 이상 인구의 38%가량이 난청을 겪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보청기에 대한 건보 급여 혜택은 청각 장애인으로 한정돼 대다수 노인성 난청 환자들은 고가의 보청기를 구매하지 못한 채 난청을 방치하는 실정이다. 2017년부터 토론회 등을 통해 노인성 난청 급여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 온 학계는 “초고령 사회에 난청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이제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과학회와 대한난청협회, 이비인후과의사회는 최근 국회에서 ‘노인성 난청 국가지원 방안 마련 토론회’를 열고 노인 보청기 급여화를 통한 난청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했다. 지난해 65세 이상의 보청기 보험 급여 지원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노년층에게 난청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사회적 단절을 가져오고 우울증을 유발하며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면서 “노인성 난청이 지니는 보건·사회학적 의미가 크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노력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근래 난청과 치매 발생의 연관성 관련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치매 예방, 중재 및 관리 보고서’를 보면 치매 예방을 위한 14가지 조절 가능한 ‘위험 인자’ 가운데 노인성 난청과 높은 LDL콜레스테롤이 각각 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치매의 45%는 예방 가능한데, 3분의 1이 난청 관련 인자였다. 또 미국 의사협회지(JAMA)의 연구 논문에선 난청인이 보청기를 사용하면 치매 위험을 약 12%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보청기 사용의 유용성이 규명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비장애 난청 노인에 대한 보청기 지원 대책이 전무하다. 난청협회에 의하면 국내 청각장애인 등록자는 약 45만명이다. 청각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지만 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는 난청 인구는 약 600만명으로 추정된다. 협회 김재호 이사장은 “특히 난청으로 고생하는 노년 인구의 다수는 청각장애 등급에 해당하지 않아 국가 지원을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과학회에 따르면 청력의 정도(데시벨·㏈)에 따라 정상(0~25㏈), 경도 난청(26~40㏈), 중등도 난청(41~55㏈), 중등고도 난청(56~70㏈), 고도 난청(71~90㏈), 농(91㏈ 이상)으로 구분된다. 청각장애 등록 기준은 양쪽 청력이 60㏈ 이상인 경우다. 그런데 보청기가 필요한 정도의 난청은 이보다 낮은 ‘중등도 난청’ 부터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중등도 난청은 보통 수준의 대화가 어려우며 TV 시청 시 다른 사람보다 볼륨을 높여야 하는 단계다. 즉 40㏈ 이상에서 60㏈ 미만의 난청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서재현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2019~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보면 노인성 난청인의 약 6%만이 보청기 급여(구입 비용 130만원 지원)를 받고 있으며 35.4%는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65세 이상 인구 중 중등도 난청으로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나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한 인구는 130만명으로 추산된다.


박무균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노인 보청기는 비용 편익이 우수한 경제적 치료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보청기는 단순히 의사소통 장애나 심리적 위축 및 삶의 질 문제를 넘어 사고 위험, 생산성, 낙상 등 다른 질환 동반을 감소시키는 데 유의미한 치료”라면서 “선행 연구에서 보청기의 비용 대 편익은 30배 이상이고 오래 쓸수록 이득이 증가하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청기 사용을 가로막는 큰 요인 중 하나는 비싼 비용이다. 실제 국내에서 급여 지원이 없는 중등도 난청(40~55㏈)의 보청기 구입 비율은 17.4%, 장기 사용 비율은 12.6%에 그친다는 조사가 있다.

박 교수는 올해 65세 이상 노인 대상 50~59㏈ 난청에 보청기 급여 지원을 시작할 경우 급여율 50% 적용(보청기 가격 100만원) 시 필요한 예산은 294억원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동일 조건으로 70세 이상에 적용할 땐 240억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과학회 회장인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만약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면 노인 틀니나 임플란트의 급여화 사례처럼 지원 연령이나 본인 부담률의 단계적 적용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선 보청기 급여화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틀니 및 임플란트 건보 적용은 75세 이상(2012년)→70세 이상(2015년)→65세 이상(2016년)으로 확대됐으며 본인 부담률도 2012년 50%에서 2018년 30%로 줄었다.

이동희 이과학회 보청기연구회 전임 회장은 “현재 장애인 보청기 지원 절차와 급여 제품 및 결정 가격 고시 등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는 만큼 노인 보청기 급여화를 바로 시작해도 준비는 돼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무조건 보청기 판매량을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올바른 난청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과 보험재정을 지속할 수 있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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