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술’ 뒤에 숨은 정치권… 정국 수습은 뒷전

Է:2024-1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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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출신 尹 수사 불응 모순
여야, 재판관 숫자 입장도 달라져
국민 안중에 없고 양극화 부추겨

25일 강추위로 고드름이 걸린 서울 여의도 한강변 나뭇가지 너머에 국회의사당이 서 있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연말까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추진 문제로 또 한 번의 충돌을 예고했다. 최현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각자의 이해득실에만 충실한 법리 해석을 내세워 공방을 벌이면서 탄핵 정국에서의 사회적 갈등과 국민 불안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수사에 임하는 태도,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 등 여러 길목에서 당리당략 태도와 남탓, 전례를 뒤집는 모순적 행보가 나타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어떤 식으로 일단락되든 사회 분열이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권력 굴하지 않는 법 집행” 말했던 尹

윤 대통령은 2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은 지난 18일에 이어 두 번째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내일 출석하기는 어렵지 않나 보고 있다”고 밝혀 불출석 방침임을 예고했었다. 향후 수사기관의 조사에도 응하겠지만, 그보다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앞에서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을 먼저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 측의 설명이다.

현직 대통령 수사 자체는 초유의 일이다. 다만 내란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서 조사 시기와 방식을 직접 결정하겠다는 식의 대응은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모두에게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했던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은 이 대목에서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총장 시절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법 집행을 해야 살아 있는 권력 또한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받을 수 있다”며 “정권 차원에서도 엄정한 수사는 꼭 필요하다”고 했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비상계엄 배경 설명의 장으로 인식하지만 정작 헌재의 재판 절차에는 비협조적인 모습이다. 헌재는 앞서 지난 24일까지 윤 대통령 측에 국무회의록과 포고령 자료 등을 제출토록 명령했으나 윤 대통령 측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은 장외에서 “본격적 심리를 ‘6인 체제’에서 할 수 있는지 논쟁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재판관 구성 문제부터 지적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6명으로도 이번 탄핵심판의 심리와 결정 모두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검장 출신 한 변호사는 “법치가 무너졌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작 본인은 법치를 안 따르는 모습 아니냐”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법조인은 “비상계엄이 국가를 위한 행동으로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하루빨리 직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요구해야 맞지 않느냐”고 했다.

헌재에서 기각 결정을 얻어 직무에 복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2004년 3월 탄핵심판에 소추됐을 때 빠른 재판 진행을 원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변론조서를 보면 국회 탄핵소추위원 측은 변론기일을 총선 이후로 연기할 것을 주장했으나 노 전 대통령 측은 “선거를 이유로 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맞섰다. 소추위원 측이 많은 증인을 신청하자 노 전 대통령 측은 “절차의 낭비”라며 “재판부는 신속히 탄핵재판을 진행해 대통령의 직무권한 정지라는 비상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윤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 여부를 심판할 헌법재판관 숫자를 둘러싼 논쟁들도 소모적 양상으로 굴러가고 있다. 재판관이 꼭 9인이 돼야 하느냐의 문제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크게 다뤄졌던 사안인데 당시와 비교하면 대통령과 국회, 여야의 각 입장이 현재 묘하게 뒤집혀 있기도 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 1명을 더 임명해 8인이 아닌 9인으로 심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헌재 구성부터 완결해서 공정성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를 게을리하면 재판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까지 했다. 8년이 흐른 지금은 윤 대통령 탄핵을 막거나 시점을 늦추려는 여당이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에 미온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공석인 3인의 헌법재판관을 빨리 채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는 황 권한대행에게 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 의원들도 있었다. 현재의 공방은 결국 지금의 헌재가 6인 체제로 심리할 경우 단 한 명의 재판관만 기각 의견을 제시해도 윤 대통령이 파면을 피하는 데서 빚어진 현상인 것이다. 모두 한편으로는 필요한 법리적 공방일 수 있지만 국민적 관심과 거리가 있는 지엽적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탄핵 정국, 출구 없는 대치

탄핵 정국에서 정치적 타협이나 해결 없이 사법적 판단에 명운을 거는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이 ‘내란·김건희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와 관련해 “여야가 타협안을 갖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로 공을 넘기자 격분한 민주당은 “내란을 지속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권한대행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애초부터 한 권한대행의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임을 밝혀 왔다. 국민은 이제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안 가결 정족수는 어떻게 되는지, 직무가 정지된 이후에는 누가 권한을 대행하게 되는지 공부하듯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한 권한대행이 만일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당시인 2004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면법 개정안 등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건, 황교안 전 권한대행 당시 문제 없이 인정됐던 권한들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존중해야 한다”며 “문제가 된다면 이후 권한대행과 관련한 법 규정을 새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 혼란의 와중에 국민은 ‘민주당이 앞으로 집권당이 될 것인가, 대선에서 새 정부를 만들 것인가’를 판단한다”며 “숫자의 힘을 믿고 계속 힘으로 몰아친다면 어떤 국민이 좋아하겠느냐”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가 모두 진영화되다보니 중립지대가 사라지고 있다”며 “네편 내편을 떠나 의견을 들을 만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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