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3일 TV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처음 접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 2024년 한국에서 군부독재 시대에 있었던 계엄령이 다시 선포된다는 것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활동의 금지,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 선동의 금지 그리고 언론·출판에 대한 계엄사의 통제 등 6개 항으로 이뤄진 포고령도 처음엔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비상계엄 선포를 접한 순간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5·18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물론이고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어릴 때부터 계엄군의 학살에 대해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나는 광주 시민들이 느낀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계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 제한 조치가 결국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을 ‘처단’하겠다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족과 친구 중에서는 영부인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비판했던 과거 기명 칼럼 등을 언급하며 걱정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두려움을 느낀 많은 사람이 SNS의 비판적 게시물을 지우거나 계정을 폭파했다. 나아가 카카오톡 등 국내 SNS가 차단 또는 검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사용자들이 몰리는 ‘디지털 망명’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와 제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예술인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한 데서 벌어졌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부끄럽게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예술가들이 트라우마를 겪으며 힘들어할 때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을 계엄 사태 이후 뒤늦게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진부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최근 경북 구미시가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가수 이승환의 콘서트를 취소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시민과 관객의 안전 우려와 함께 이승환의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라는 서약서 날인 거부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이승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한편 탄핵 촉구 집회에서 공연한 것에 대해 구미 보수 단체가 반발하자 예측할 수 없는 물리적 충돌을 고려해 대관을 취소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예술가에게 정치적 발언을 운운하며 문서 서명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사전 검열행위로, 표현의 자유 위배다. 이번 이승환 콘서트 취소 사태에서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내세우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바람직하지 않다’ 등의 추상적 기준은 결국 정파적 이익에 동원되는 수사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 등 공동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도 막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라는 증거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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