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말보다 먼저였다.” 책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태어나 말하기 전에 엄마의 젖으로 영양섭취부터 해야 한다.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지만 식량이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는 나약한 존재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음식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 문화 저술가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는 “모든 것은 식사 후에 일어난다”는 말을 남겼다. 문화인류학자인 엄마와 역사학자인 아들이 함께 쓴 책은 ‘익숙한 맛의 낯선 근원’을 다루는 음식의 이야기이자, 오랜 사회·문화적 매개체로서의 음식을 다루는 문화의 이야기다.
수렵 채집을 하던 인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통제한 첫 시도는 1만1000년 전부터 시작된 농경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섭취하는 열량 중 73%는 주식에 해당하는 쌀, 밀, 옥수수, 마니옥(카사바)에서 나온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대 농경의 산물들은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농경 생활은 인구를 늘렸고, 장기적으로 자유 시간을 갖게 된 인류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수확된 곡물로 세금을 거두고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도 탄생했다. 밀(로마), 쌀(중국 한나라) 등 다른 작물보다 생산, 저장, 운송, 조리가 수월했던 곡물들은 제국의 바탕이 됐다.
중세 유럽에는 성지로 이어진 순례길을 통해 음식이 공유됐다. 특히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천년 넘게 수많은 순례자가 모여들었다. 갈리시아 특산물인 가리비와 해산물이 순례자의 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순례길에 벗이 되어 주었던 것은 맥주였다. 맥주에 처음 홉을 넣어 현재 우리가 즐기는 맥주의 맛을 낸 것은 가톨릭 수도승들이었다. 베네딕토회 수도원장이자 주교였던 프랑스 수아송의 성 아놀드는 맥주 양조업자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유럽 가톨릭교회에서는 맥주 제조 허가를 내주고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 비싼 수수료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맥주를 만들 수 없게 됐고, 대신 많은 시간과 자원을 가진 수도승들은 다양한 실험을 거쳐 상당한 수준의 맥주를 만들어 냈다. 십자군 원정 때는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그 지역 음식과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여성을 포로로 데려오기도 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던 약탈 품목은 비단길을 통해 아랍 상인들이 소량만 들여오던 사치품, 향신료였다.
귀하디귀한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한 유럽 각국의 쟁탈전은 1492년 아메리카라는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진다. ‘콜럼버스의 교환’이 시작된 이후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식재료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식문화의 대격변이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에 그전에는 없었던 피망, 애호박, 토마토가 들어갔고, 한국 음식 하면 떠올리는 고추의 매운맛도 16세기 이후에 등장했다. 지금은 감자가 서양 요리에서는 빠지면 안 되는 식재료지만 처음 유럽에 들어왔을 때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1751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백과 전서’에는 감자에 대해 “뿌리는 맛이 없고 퍼석퍼석하다. 먹기 좋은 음식으로 분류될 수는 없지만 영양 섭취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풍부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는 건강식”이라고 설명됐다. 감자는 ‘위장에 가스를 차게 하는’ 음식으로 치부되면서 영양 섭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상류층은 꺼렸다. 하지만 프랑스 왕실에서 송로버섯과 크림, 버터와 함께 얇게 썬 감자를 조리해 먹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감자의 위상이 만들어졌다.
유럽 각국의 식민지 건설을 계기로 차와 커피, 초콜릿 등은 서양에서 점차 대중화됐다. 책에는 특히 초콜릿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멕시코를 점령한 후 카카오를 가져왔다. 마야인들은 카카오 가루로 만든 음료를 ‘쇼콜라틀’로 불렀다. 초콜릿의 어원이 된다. 초콜릿은 처음에는 음료로 즐겼으나, 이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마시는 음료가 아닌 고체 형태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초콜릿을 빨간 하트 모양의 상자에 담아 팔기 시작하면서 초콜릿과 로맨스는 한 쌍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 제과 업계가 초콜릿 판촉 활동을 벌이면서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은 동의어가 됐다. 허쉬는 미군 전투 식량에 초콜릿 바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초콜릿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산업혁명 이후 음식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장기간 보존하는 방법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식문화도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예전 부자들만 접할 수 있던 흰 밀가루는 흔한 식재료가 됐고, 1809년 나폴레옹 전쟁 중 캔 통조림이 개발되면서 어디에서나 보존 음식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대도시에서는 전등이 밤을 밝히면서 집 밖에서 늦은 시간에도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일본에서는 철도의 등장으로 해안가에서나 먹던 회가 도시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특히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된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장을 봐도 되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저자들은 “현대인들은 선조들이 음식을 먹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고된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됐다. 산업화의 이점은 분명 기억해야 한다”면서도 “식량 시스템의 안정성, 자연환경,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생물들의 유전적 다양성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식문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설거지까지도
·음식을 통해 세계사를 정리할 수 있다
·각 장에 소제목이 많았으면 훨씬 읽기 쉬웠을 것 같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