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시국을 맞고 있는 올해 성탄절 ‘미국의 시인’이라고 불리던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의 시 한 편이 생각난다. 1863년 성탄절을 맞아 롱펠로가 쓴 ‘성탄절 종소리’(Christmas Bells)다.
“성탄절 날, 나는 종소리를 들었네”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당시 수많은 미국인의 가슴과 입술에 한 문장을 심어줬다. “땅에서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의.”(Peace on earth, good-will to men). 예수께서 탄생하던 때 하늘의 천군 천사가 목자들에게 들려준 찬송에 바탕을 둔 문장이다. 롱펠로는 시의 7개 연마다 마지막 행을 이 문장으로 장식했다. 그 덕에 이 시를 듣고 읽다 보면 “땅에서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의”란 문장이 자연스레 외워질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미국 최고의 유명인사이자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시인, 하버드대 교수…. 롱펠로의 이력은 실로 화려했다. 시 ‘성탄절 종소리’는 제목만 보면 그의 이력에 걸맞은 축제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쪽에서는 대포가 천둥을 치고 그 소리에 (성탄절) 캐럴은 묻혀버렸네.” 남북전쟁 상황을 묘사한 이 시의 한 대목이다. 롱펠로가 시를 쓰기 시작할 당시 미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삼 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전쟁이 시작하던 해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 패니를 화재 사고로 잃었다. 롱펠로는 노예제의 악함을 시로 폭로한 바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에게도 큰 감명을 준 시였다. 그러나 그가 노래한 노예 해방의 꿈은 나라가 둘로 나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현실로 산산조각이 났고 자신이 몸을 던져 구하고자 했던 아내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숨졌다. 그래서일까. 성탄을 노래한 이 시의 한 대목에서 롱펠로는 말한다. “절망 속에 나는 머리를 떨구었네, 이 땅에 평화는 없네.”
하지만 전쟁과 죽음의 절망도 ‘성탄절 종소리’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와 상의 없이 북군에 지원해 전장에 나간 아들 찰스가 총상을 입어 위태한 상황에 부닥치자 롱펠로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간호한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전장으로 뛰쳐나간 아들이었다. 롱펠로 자신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부상병이 돼 돌아온 아들을 맞은 그해 12월엔 그조차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아버지가 돼야만 했다.
이렇게 맞이한 그해의 성탄절 날 롱펠로의 귀에 들린 종소리는 시의 마지막 연이 되어 지금껏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러자 종소리가 더 크고 깊게 울렸다.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다. 그는 주무시지도 않는다!” 이듬해 2월 아들은 건강을 되찾아 명예제대로 군 생활을 마쳤다. 시가 나온 지 2년 뒤에 전쟁을 끝낸 미국인들은 시의 마지막 행에 비로소 공감했다. “불의는 지고 의는 승리하리. 땅에서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의.”
2024년 12월,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어려운 시국 가운데 들려오는 여러 소리와 혹독한 날씨에도 국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크고 어려운 상황에도 성탄의 종소리가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지길 기도한다. 소리는 작아도 괜찮다. 롱펠로의 시 속의 종소리가 점점 커지듯 우리에게도 종소리가 조금씩 더 커지길 바란다. 점점 커진 종소리는 수많은 천군 천사의 찬송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 속에 담긴 이 메시지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또렷이 울려 퍼지길 기도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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