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한 성도님이 꿈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님을 꿈에서 뵀어요.”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의 이야기가 뜻밖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무 지저분하고 초라한 모습이셨어요.” 성도님은 꿈속에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고 다니세요.”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너와 함께 다녀서 그렇다.”
그 성도님은 그날의 꿈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끄셔야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주님을 마땅치 않은 곳으로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쁠 때만 함께하시고 어려울 때는 잠시 떠나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께 근심이 될 때도 여전히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이 사실을 망각하고 신앙의 중심에서 벗어나 세상의 흐름에 이끌릴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고 말씀합니다. 죄의 오물에 빠져 살아가면서 주님을 모신다면 그 모습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성령이 이끄는 삶입니다. 세상에 취해 살아가는 대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배는 교회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일상 속 작은 일 하나에서도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진정한 예배의 삶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했지만 세상 앞에서는 외면했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삶의 모든 자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성령이 이끄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예배는 단순히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의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드려야 하는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속이 비어 있는 상태라면 주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어떻게 보실지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 충만한 삶은 예배를 확장합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삶’을 살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처럼 성령께서 이끄실 때 우리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해졌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도 이 선교적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해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고 많은 이들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적 삶은 나만의 신앙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지만 그 동행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반영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산다면 주님께서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위로이자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날 우리의 삶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늘 돌아보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어디에서나 예배하며 선교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삶의 자리마다 주님의 은혜와 영광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자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목적입니다.
(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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