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주심 재판관으로 지정된 데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헌법 재판의 구조상 주심 재판관 1명이 재판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재판장이 주도권을 갖고 배석 법관들은 보조하는 법원 재판의 합의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 재판에서 주심 재판관의 주요 역할은 재판 절차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있다. 사실관계나 쟁점을 정리하고 이를 재판관 회의 등에 보고하는 역할이다. 주심은 물론이고 변론을 주재하는 재판장(헌재소장)도 다른 재판관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재판은 재판관 전체 회의와 평의(評議) 등을 통해 증거 채택 여부, 심리 속도 및 사건 처리 방향 등이 결정된다.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주심 재판관인 셈”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봤을 때 주심 재판관이 홀로 재판 절차를 주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이런 무게의 사건에서 주심의 역할은 딱 ‘발제자’ 정도에 그친다”며 “재판관들도 토론 과정에서 각자의 입장이 명확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논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주심 재판관이 다수 의견에 설 때 결정문 초안 작성 업무는 주심 재판관이 맡는다. 다만 이 경우도 재판관 평의 등에서 토론을 거쳐 나온 결론을 토대로 작성하는 것으로 개별 재판관의 주관이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결정문 초안을 회람한 뒤 재판관들이 수정하거나 가필하기도 한다. 결정문 초안도 주심 재판관이 홀로 쓰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관들이 사건 처리를 논의하고 쟁점을 토론하는 평의는 헌재법상 비공개로 진행된다. 평의에서 재판관들은 기수나 나이 우열 없이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재판관들은 기수 등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대신 ‘호(號)’로 서로를 지칭한다고 한다. 종종 의견이 대립하는 재판관 사이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경우도 있다.
법원 내부에서 정 재판관은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정통 법관으로 분류된다. 본인 성향보다는 법리와 증거에 기초해 판결을 내리는 훈련이 돼 있는 법관이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수십년 법관 생활을 일탈 없이 해오신 분”이라며 “특별한 색깔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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