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오봉제, 거울 같은 호수에 담긴 늦가을 서정

Է:2024-12-1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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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만난 전남 나주의 가을 풍경

이른 아침 전남 나주시 세지면 오봉저수지의 잔잔한 수면에 주황빛 메타세쿼이아가 담겨있는 풍경. 안개에 휩싸이면 신비함이 더해진다.

올가을은 유난히 짧다. 늦더위 탓에 뒤늦게 물든 단풍은 일찍 찾아온 폭설에 져버려 짧은 가을을 더욱 아쉽게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 지역에는 12월 초까지 늦가을 정취가 남아 있었다. 귀한 풍경을 찾아 전남 나주로 향했다.

나주평야에는 농업용수를 대기 위한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나주에서 초겨울에도 늦가을 서정을 담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세지면 오봉리 오봉저수지(오봉제)다. 저수지는 주변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17년 착공, 1919년 완공됐다. 제방 길이 265m, 유효저수량 7만 660t 규모다.

이른 아침 저수지는 고요와 신비의 공간이다. 물결이 거의 없어 거울처럼 잔잔하다. 그 수면 위로 건너편 주황빛으로 찬란하게 물든 메타세쿼이아 풍경이 그대로 물에 담겨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판타지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수면에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신비한 풍경이 더해진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물새들이 정적을 깨운다. 산 위로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며 만물을 깨우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전남 화순의 세량지나 충남 공주의 송곡저수지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풍긴다. 아직 덜 알려졌지만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천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 위 거목 사이에 자리한 벽류정.

인근 세지면 벽산리에 벽류정(碧流亭)이 있다. 단층 팔작 기와지붕에 정면 3칸·측면 3칸으로, 가운데 중재실(中齋室)에 온돌방이 있는 단아한 정자다. 이곳은 1429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판을 지낸 조주(趙注)가 은거하면서 지은 별서(別墅)가 있었던 터다. 외손인 광산김씨 집안이 물려받아 1608년 무과급제를 한 뒤 김해부사를 지낸 김운해(金運海)의 소유가 됐다. 이 터에 김운해가 1640년(인조 8년)에 벽류정을 건립했다. 1678년(숙종4), 1862년(철종13), 1998년 중수와 수리를 거듭했다.

벽류정 주변은 직강 공사를 해 강물의 형태가 변했지만 바로 아래 영산강 지류인 금천(錦川)이 휘돌아 흐르고 있다. 주위는 우람한 수목들이 즐비하다. 뒤편으로는 하늘 높이 키를 키운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름 그대로 푸른빛이 흐른다.

12월에도 단풍에 둘러싸인 영산강변 영모정.

나주에서 벽류정과 겨룰 만한 정자가 있다면 다시면 회진리 영모정(永慕亭)이다. 1556년(명종 11년)에 나주임씨 임복(林復·1521~1576)이 건립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누정으로, 온돌방 1칸과 누마루 2칸으로 주위에 폐쇄적 벽과 문으로 구성됐다. 영산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400년 된 팽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지으며 평생을 기인처럼 자유롭게 살았던 인물이 조선시대 명문장가 백호 임제다. 그는 평안도 도사로 부임해 가는 길에 이미 죽은 40세 연상의 황진이 무덤 앞에서 그를 추모하며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느냐/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는 시조를 남겼다. 그는 기녀의 무덤을 찾아가 추념했다는 이유로 파직됐다. 영모정 한쪽에 그의 호방하고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빼닮은 듯 단풍이 마지막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다. 바로 옆에 백호문학관이 있다.

영모정 인근에 영산강 고대문화의 보고(寶庫) ‘복암리 고분’이 자리한다. 1996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 결과 보물급 금동신발을 비롯, 은제관식(銀製冠飾), 장식대도(裝飾大刀) 등 1000점이 넘는 각종 유물이 출토됐다. 하나의 거대한 분구(墳丘) 안에 옹관묘와 목관묘(木棺墓), 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 등 7종류의 묘제가 드러났다.

반남고분군에서 발굴된 국보 금동관과 독널.

나주에서 또 다른 유명 고분은 반남면 ‘반남고분군’이다. 자미산을 중심으로 신촌리·대안리·덕산리의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일제강점기 발굴 조사에서 신촌리 금동관(국보 295호)이 출토됐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독널(옹관)도 당시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들 유물은 일본 유출을 위해 서울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돼 있다가 다행히 광복되면서 국내에 남게 됐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던 유물은 현재 국립나주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고대 마한문화의 위력을 확인하는 반암고분군.

고분 바로 옆에 2013년 건립된 국립나주박물관이 있다. 제1전시실에는 영산강 유역의 고분 문화 등 12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특히 독널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금동신발, 봉황무늬고리자루칼, 창, 화살촉 등 고대 마한문화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메모
오봉저수지 내비 ‘오봉리 산 3-1’ 검색
나주박물관 고대 거울 모티브 전시 중

오봉저수지(오봉제)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세지면 오봉저수지는 내비게이션에 ‘나주 오봉제’를 검색하거나 ‘세지면 오봉리 산 3-1’을 찾으면 된다.

저수지 주변에는 주차장, 화장실 등이 없다. 주차도 저수지 둑 인근 갓길에 해야 하는데 저수지 뒤편에 종돈 농장이 있어 대형차가 수시로 드나드는 만큼 통행로 확보를 염두에 둬야 한다. 둑에서 봤을 때 전방 왼쪽 산 위로 오전 8시 20분쯤 해가 떠오른다.

벽류정 옆 대나무 숲은 걷기에 좋다. 중간중간 의자도 마련돼 있어 쉬엄쉬엄 산책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멍때리기’를 하기에도 그만이다.

복암리 고분군은 영모정 가는 길에 보인다. 영모정을 내비게이션에 검색하면 좁은 길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 ‘회진리 92-6’을 찾아가면 편하다. 갓길이 넓어 주차하기도 좋다. 인근 나주천연염색문화관에서는 전통천연염색 상품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관람은 무료이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 오후 7시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대규모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주변 고분군은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볼 수 있다. 내년 2월 9일까지 고대 거울을 모티브로 한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이란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나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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