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과 침례교 목사에서 폭스뉴스 진행자로 변신한 마이크 허커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함 있는 인물을 사용하는 오랜 전통을 잇는 새로운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소개하며 쓴 표현이다. 미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성추문 등 도덕적 결함이 있는 트럼프를 다윗과 솔로몬에 빗대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그동안 복음주의권에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내세우면서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프로라이프(낙태 반대)와 동성애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많은 크리스천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것도 이 같은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휘튼칼리지 미국복음주의자연구소에 따르면 19세기 초 미국에서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가장 지배적인 형태가 됐다. 1989년 영국 학자 데이비드 베빙턴은 네 가지 주요 특성으로 복음주의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 성경주의(성경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임). 둘째, 십자가 중심주의(예수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속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 셋째, 회심주의(죄인은 거듭나야 하고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한다는 믿음). 넷째, 행동주의(내면의 변화는 복음을 전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믿음)다.
그런데 트럼프가 내세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일까. 이로 인해 불법 이민자들은 추방될 것이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며, 기후위기 대응은 후퇴하고 고관세로 무역상대국은 고통받을 것이 뻔한데도.
물론 미국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바라보며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한 이들도 있다. 문제는 미국 우상화를 기독교 가치 수호로 착각하는 이들이다. 올해 부활절을 앞두고 트럼프가 판촉에 나서서 논란이 된 트럼프 바이블은 표지 중간에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란 제목이 새겨져 있다. 특유의 국가주의와 기독교 가치를 혼합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목사의 아들이자 미국 저널리스트인 팀 앨버타는 저서 ‘나라 권력 영광’에서 “복음주의는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는 표식에서 정치적 성향을 띤 운동으로 변모해 갔고, 결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 보수주의자’와 동의어가 됐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의 결합도 미국과 비슷하다. 국내 기독교 보수 교단들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집권기간 내내 극우세력과 연합해 탄탄한 지지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주술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보수교단과 윤 대통령의 지나친 밀착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윤 대통령의 실정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실패로 비치게 할 수 있다. 칼 바르트는 “교회는 세상의 질서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 거리는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되, 그 영향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방패와도 같다”고 설파했다.
보수 교단들이 성경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정치세력을 우상화하고, 세속적인 권력에 편승하려는 순간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유다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라고 말씀하셨다.
반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 기치를 내걸었던 10·27 한국교회연합예배가 종교를 떠나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던 것은 정치적 구호를 배제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강한 가족, 표현의 자유 가치를 외쳤기 때문이 아닐까. 내년에 140주년을 맞는 한국 기독교가 미국 복음주의의 세속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유한한 정치권력에 편승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길 바란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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