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서성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동시에 환호하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눈물을 훔치는 의원도 다수였다.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무죄 선고 소식이 속보를 통해 전해진 순간이었다. 비슷한 시간 국민의힘 내에서는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법리스크’ 반사이익에 기대지 않겠다던 여당이지만 무죄 선고에는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는 야당 대표의 최종심도 아닌 1심 판결에 여야 모두가 목을 매는 ‘정치의 사법 과의존’ 현상을 보여준다. 지난 15일과 25일, 열흘 간격으로 나온 2건의 이 대표 1심 판결은 올가을 내내 정치권 전체를 영향권에 뒀다. 각 선고 결과가 나올 때마다 여야의 희비는 엇갈렸고, 정국은 요동쳤다. 재판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소모전이 벌어지는 사이 정작 국회가 우선해야 할 민생과 경제, 안보 등 현안은 후순위로 밀리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당은 당의 선장이자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 수호에 온 당력을 투입했다. 이달 들어 4주 연속 주말 도심집회를 열었고, 두 번의 선고 당일에는 법원 인근에서 집회를 개최해 재판부를 압박했다. 당선무효형이 나왔던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를 앞두고서는 이 대표 혐의인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삭제하고, 당선무효형의 기준을 현행 벌금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건 발의하기도 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법원 예산을 241억원 증액하기도 했다.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활용해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국민의힘 역시 이 대표 1심 선고를 정국 주도권을 잡는 기회로 삼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당은 15일 공직선거법 선고 결과에 환호하며 조속한 항소심 재판 진행을 촉구했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부각해 김건희 여사 문제,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 등 여권에 쏠린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로도 읽혔다. 그런 국민의힘이 25일 위증교사 무죄 선고가 나오자 “상식 밖의 판결”이라고 재판부를 겨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6일 통화에서 “이미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공고화된 상황에서 국가의 미래 비전을 고민하기보다는 눈앞의 당리당략에 매달리는 정치인들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지금 법원 1심 판결 하나를 두고 대통령 탄핵이 되니 마니 말이 나오고, 차기 대권 구도 자체가 흔들리는 판”이라며 “온 정치권이 판사의 ‘망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법관 출신인 황우여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동산 문제와 자영업자 문제, 반도체 산업, 대미·대중 외교 등 국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최종심까지 한참 남은 법원의 하급심 판결들에 대해서 정치권은 ‘결과가 그러냐’ 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이 대표 1심 선고 결과가 양당 지지율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의 11월 1~3주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27~29%, 34~36% 수준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이 대표 사법리스크는 이미 양당 지지율에 다 반영돼 있는 상태”라며 “여야 모두 사법 이슈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현수 이강민 기자 jukebox@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