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압해도, 서남해 전략적 요충지에서 만난 황금빛 꽃 정원

Է:2024-11-2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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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다의 길목 전남 신안 압해

고대 서해안 중요한 뱃길에 위치한 전남 신안군 압해읍 고이도에 조성된 대규모 아자니아꽃 정원. 늦가을 초겨울에 피는 앙증맞은 노란색 꽃이 황금빛 융단을 펼쳐놓는다.

전남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 신안군은 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섬이 운집한 도서지역이다. 74개의 유인도와 951개의 무인도 등 총 1025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나무가 없는 섬을 제외하면 1004개다. 신안군은 이를 ‘1004섬(천사섬)’으로 브랜드화했다. 군청은 압해도(押海島)에 있다.

압해도가 있는 압해읍에서 10㎞ 떨어진 곳에 고이도(古耳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작지만 역사적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 지역은 고대 중요한 뱃길이었다. 남해의 섬 사이를 타고 올라온 배가 북상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 섬과 섬 사이 뱃길인 ‘고이도 항로’였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도 고이도를 거쳐야 했다. 장보고의 후원을 받아 당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일본 헤이안 시대 고승 엔닌(圓仁)이 847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 고이도를 거쳐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이도는 일제강점기 말까지도 ‘왕도’로 불리다가 고이도로 개칭했는데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인 왕망이 고려 왕조의 전복을 꾀하며 왕이라 자칭하고 살았던 곳이라 하여 ‘옛 고(古)’자와 ‘섬의 모양이 귀와 비슷하다’ 하여 ‘귀 이(耳)’ 자를 써서 고이도라 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섬의 형태가 고양이 귀(고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고이도라 했다고도 전해 온다.

후삼국 평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왕망은 고려 건국 이후 왕건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자 왕건을 전복할 계획을 세운다. 역모를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자 왕망은 고이도로 숨어들어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비축했다. 왕건은 왕망을 공격했고, 왕망은 끝내 투항하지 않고 접전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고이도의 최고봉인 왕산(태봉산·해발 88.9m) 정상에 오르면 무안군의 내륙지역과 인근의 병풍도, 매화도, 마산도, 지도읍, 그리고 압해읍 송공산과 천사대교가 사방으로 조망된다.

고이도 최고봉인 왕산 정상을 따라 축성된 왕산산성.

이곳에 바닷길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된 왕산산성(王山山城)이 있다. 정상부와 계곡을 연결한 산성은 자연석과 잡석을 이용해 쌓았는데, 대부분이 붕괴해 현재 길이 1㎞, 높이 1.5m, 폭 3m 정도 남아 있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절요’에 909년 왕건이 후백제를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제 고이도는 전략적 중요성이 아닌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섬 주민들이 2년간 가꾼 거대한 꽃밭 덕분이다. 아자니아(Ajania pacifica)라고 불리는 이 꽃은 일본 혼슈 지방이 원산지다. 우리말로 ‘갯국’이다.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로, 늦가을에 앙증맞은 노란색 꽃을 뭉쳐서 피워낸다. 우리나라 다도해에도 드문드문 산재하고 있으며 은색 잎 가장자리 위로 금색 꽃이 피워 금은국화로도 불린다.

활짝 핀 아자니아꽃.

고이도에는 약 5000만 송이의 꽃을 피워낼 총 66만 본이 심겨 있다. 만개할 것으로 예상됐던 지난 1~10일 ‘섬 아자니아꽃 축제’가 개최됐지만 이상 기후 탓에 개화 시기가 늦어져 요즘 한창이다.

압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또 다른 곳은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송공산(230.9m)이다. 신안군 제1의 다도해 전망대다. 높지 않은 산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고, 산허리를 도는 둘레길을 산책할 수도 있다.

송공산에는 ‘수달 장군’ 능창이 쌓았다는 송공산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능창에 관한 이야기는 ‘고려사’에 전해 온다. ‘압해현의 적수 능창이 해도(海島) 출신으로 수전(水戰)을 잘하여 수달(水獺)이라고 하였는데…’라고 기록돼 있다. 912년 능창이 압해도를 근거로 왕건과 대립하다가 결국 왕건에게 잡혀 제거된다.

송공산성은 산정을 감싼 테뫼식 산성이다. 일제강점기까지 정상부에 성벽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축성 시기는 삼한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거의 무너져 원형 짐작조차 힘들다.

송공산 남쪽 자락에 천사섬 분재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16만5000㎡(5만평) 규모의 광활한 바다정원에 미술관, 유리온실, 미니 동물원, 체험학습장 등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압해읍 동서리에 높이 4.8m로 우뚝한 국내 최대 규모 선돌.

송공산과 가까운 동서리에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상징인 선돌이 있다.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은 높이 4.8m, 둘레 1m, 두께 0.5m로 국내 최대 규모 입석(立石)이다. 농경지 내에 방치돼 훼손이 우려됐던 선돌은 군립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여행메모
신월·가룡에서 5~10분 거리 고이도
‘동서리 선돌’은 명칭 대신 주소 검색

고이도는 무안군 운남면 신월선착장이나 신안군 압해읍 가룡선착장에서 갈 수 있다. 각각 5분, 10분 거리다. 신월선착장에서는 자주 오가지만 차를 실을 수 없는 도선이 운항하고, 가룡선착장에서는 차를 실을 수 있는 차도선(카페리)가 가지만 운항 횟수가 적다.

도선 ‘고이호’는 고이도 기준으로 오전 8시 50분, 10시 50분, 낮 12시 50분, 오후 1시 50분, 2시 50분, 4시 45분 출발해 왕복한다. 고이도 도착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마을공영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가룡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차도선 ‘에스라인호’는 하루 4차례 운항한다. 1항차와 3항차는 가룡-기섬-마산-선도-신월-고이-가룡 순으로, 2항차와 4항차는 반대로 지나간다. 가룡선착장~고이도 칠동선착장 유람선은 축제 기간에만 운항한다.

송공산 자락에 조성된 천사섬 분재정원.

대촌마을에서 수락마을로 가는 고갯마루에 무료인 ‘송공산등산로주차장’이 있다. 천사섬 분재정원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송공산 입구에 세워졌던 ‘수달 장군 능창 기념비’가 분재정원 주차장 바닷가로 옮겨져 있다. 선돌은 압해읍에서 천사대교로 향하는 길목인 ‘동서리 648-1’에 위치한다.





신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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