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능 프로그램에서 뭉클한 장면을 보았다. 출연자들이 택배는 물론 음식 배달도 되지 않는 깊은 산간 마을에 찾아가 배달 서비스를 해줬다. 그곳에 사는 한 꼬마 소녀가 배달 떡볶이를 먹고 싶다며 울먹였다. 오지이다 보니 떡볶이도 없고 배달도 안 된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떡볶이를 구해와 소녀에게 가져다주었다. 소녀는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며 말했다. “제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출연자들이 사 들고 간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녀에겐 꿈이었고 소원이었으며 기적이었다.
때론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간절한 꿈이 된다. 떡볶이 한 접시는 몇천 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평범한 간식이다. 그러나 택배와 배달이 안 되는 오지 소녀에게 떡볶이는 구하기 어려운 간절한 소원이었다. 배달앱으로 삼십 분이면 도착하는 치킨이 누군가에겐 1년에 단 한 번 생일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 된다. 매일 아침 마시는 따뜻한 커피,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웃의 반가운 인사, 무심코 지나가다 들리는 아름다운 새 소리가 누군가에겐 절실한 소원이 된다.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친절 하나가 어떤 이에겐 큰 선물이 되는 일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나의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겐 삶의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들었던 격려 한마디가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고, 지치고 힘들 때 들었던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만든다.
선행의 가치는 거창한 봉사나 물질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마음을 살피는 데 있다. 꼬마 소녀가 떡볶이에 크게 감동한 것은 그 떡볶이가 소녀에겐 가장 필요하고 원하는 간식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중산국 왕이 잔치를 베푸는데 양고기 국물이 부족했다. 공교롭게 신하인 사마자기의 몫만 없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먹고 마셨다. 서운했던 사마자기는 초나라로 망명해 초 왕을 설득해서 중산국을 공격했다.
중산국 왕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추격에 쫓겨 위험해진 순간에 낯선 병사 둘이 나타나 왕을 구해주었다. 왕이 고마워하며 그들의 정체를 묻자 병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저의 부친이 배고픔으로 쓰러졌을 때 왕께서 우연히 지나가시다가 찬밥 한 덩이를 주신 덕분에 부친께서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부친께서 유언하시길 왕께 일이 생기면 죽음으로 보답하라 하셨습니다.” 이에 왕은 탄식했다. “베푸는 것은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당함에 달렸고 원한은 깊이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상처 된 마음에 달렸구나. 나는 양고기 국물 한 그릇으로 나라를 잃고, 찬밥 한 덩어리로 목숨을 구했구나.” 사마자기는 단지 국 한 그릇을 먹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에 실망했던 것이다. 또 사정이 절박할 때는 찬밥 한 덩어리도 깊은 은혜가 된다.
선행에는 전파력이 있다. 작은 돌멩이를 호수에 던지면 잔잔한 물결이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 가듯, 도움을 받은 이는 그 감동을 떠올리며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푼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선행과 베풂은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친절과 선행은 얽힌 관계를 풀어주며, 모든 비난을 멈추게 한다. 선행이 주는 힘은 그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인간관계를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드는 데 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는 일, 길을 묻는 사람에게 대답해 주는 일, 이 작은 친절이 모여 사회를 변화하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간다. 그 소녀는 분명 누군가 자신의 소망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준 작은 친절을 기억하며 훗날 누군가에게 작은 기적을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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