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정 기자의 온화한 시선] 뜨거운 안녕

Է:2024-11-2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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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슬픔 표현하는 세상 바라며

경기도 안양 박달초등학교 합창단원들이 최근 방영된 tvN의 유퀴즈(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한 석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오른쪽). 왼쪽 사진은 프로그램 진행자인 유재석이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tvN 영상 캡처

얼마 전 TV에서 본 광고의 한 장면이다. 해외 여행지에서 쇼핑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어떤 것을 고를지 실시간으로 묻는 모습이었다. 연출된 상황이니 과장이 섞였겠지만 우리는 중대한 결정이 아닌데도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연락할 수 있게 됐다.

친척 대부분 오래전 캐나다에 이민 간 지인의 말에 놀랐던 적이 있다. 카세트테이프에 근황처럼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음해 소통했다는 설명이었다. 상대방을 떠올리며 녹음한 것이 인편을 통해 전달되고, 타국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며 웃고 울었던 추억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어린 시절이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물건을 고르면서도 상대 의사를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태어나 보니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진 요즘 아이들은 먼 곳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이토록 간절했다는 것을 알 리가 없겠다 싶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일까. 요즘 이별은 너무 쿨하다. 내일부터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 콧물을 훔치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경험이 있는 나도 그러니 말 다 했다. 이별을 굳이 슬퍼할 필요 없는 세상이 아쉬워서일까. 전학 가는 친구에게 반 아이들이 마음을 담아 부른 이별 노래가 수많은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안양 박달초등학교 합창단의 인스타그램 영상을 우연히 접하고 합창단 선생님과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먹먹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다른 이들도 나처럼 감동했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자님, 오늘 유키즈(tvN의 예능방송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연락 왔어요. 다음 주에 촬영해요”라고. 내 일처럼 기뻤다. 요즘도 이렇게 슬픈 이별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인기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했다. 지난 13일 방영된 방송에서 유재석 조세호 2명의 진행자는 아이들의 노래에 연신 눈물을 훔쳤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가 학교 숙제로 뉴스 소감문을 제출했는데 박달초 합창단을 골랐을 때도 반가웠다. 세 번째 손인 양 늘 지니는 스마트폰을 누르기만 하면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는 아이에게도 애틋한 이별의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몇 달 전에 전학 간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도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마음을 전했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썼다.

모든 일이 그렇듯 표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박달초 합창단을 설립하고 이끄는 채윤미 선생님도 “‘안녕~ 잘 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아쉬움 없이 헤어지는 모습이 삭막해 보여 늘 안타까웠다. 이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면서 ‘아이들이 표현할 방법을 모르고 그런 기회가 없었구나’를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덴 ‘너와 함께해서 좋았다’는 마음과 ‘네가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길 바란다’는 응원, 두 가지가 담겨 있다. 함께 지내온 세월을 서운해하는 마음의 표현은 상대가 스스로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누군가를 축복하는 행동은 이타적인 마음을 배우는 좋은 기회를 준다.

요즘 JTBC 예능 방송 ‘끝사랑’이 중년들에게 꽤 인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50대 이상 중년 출연자들이 속마음을 빼곡히 손편지에 담아 진심을 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금처럼 손안에 전화기가 없던 시절, 그들은 떠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 순간만큼 모두가 문학청년이 되었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넘쳐나기에 오히려 표현에 인색해진 것은 아닐까. 박달초 합창단 아이들처럼 헤어지는 누군가에게 고백해보자. 그동안 “고마웠어 행복했어 사랑했어”라고. 세상의 모든 안녕이 아이들 노래처럼 뜨거웠으면 좋겠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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