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사진) 전 의원이 기소 4년여 만에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이지만 윤 전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 4년을 지난 5월 이미 마쳤다. 재판 장기화로 인한 ‘지연된 정의’의 대표적 사례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4일 업무상 횡령·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윤 전 의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에 법리 오해나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 전 의원에 대해 “30년간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었다”고 폭로하며 시작됐다. 검찰은 그해 9월 윤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윤 전 의원은 2011~202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내면서 후원금 1억여원을 식비와 교통비 등 사적으로 쓰고, 정부·지자체를 속여 보조금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 등을 받았다.
1심에선 준비기일만 6차례 열렸다. 첫 정식 재판이 열리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1심 합의부 형사사건 평균 공판 횟수는 3.66회인데, 윤 전 의원 사건은 39회나 열렸다. 기소 2년5개월 만인 지난해 2월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일부 업무상 횡령 혐의(1718만원)를 뺀 나머지 혐의를 모두 무죄로 보고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지난해 9월 횡령 액수를 7900여만원으로 대폭 늘리면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고(故)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 1억2967만원을 개인계좌로 모금한 뒤 다른 용도로 사용한 혐의,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인건비 보조금 6520만원을 운영비 등 다른 용도로 써 편취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에서는 사건이 1년2개월간 계류됐다. 현역 의원은 임기 중 금고 이상 형(집행유예 포함)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의원은 4년간 재직하며 매달 세비 1375만원를 받는데, 의원직이 상실돼도 받은 세비를 반납할 의무가 없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윤 전 의원은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전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으로 명성을 얻어 국회의원이 됐다”며 “재판 지연으로 임기를 채운 것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의연은 입장문을 내고 “여성가족부 국고보조금 반납 등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인 재판 지연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자녀 입시비리’ 사건(대법원 계류)은 기소 후 4년11개월째, 같은 당 황운하 의원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항소심 계류)은 4년10개월째 진행 중이다. 황 의원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해서 21대 의원 임기를 채우고 재선이 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기가 정해진 특수한 지위에 있는 공직자 재판은 집중심리 등으로 재판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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