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사가 또다시 미국 해군의 함정 유지·정비·보수(MRO) 사업을 수주했다. 미국의 조선업 쇠퇴가 함정 MRO 차질로 이어지자 한국 조선소의 역량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한국과의 MRO 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인 유콘함의 정기 수리사업을 수주했다고 12일 밝혔다. 1994년 3월부터 임무에 투입된 유콘함은 길이 206m, 폭 29.6m, 배수량 3만1000t 규모다. 한화오션은 이 함정을 내년 4월까지 수리한 후 미국 해군 측에 다시 인도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4만t 규모의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쉬라호의 MRO 계약을 수주했다. 이어 세달 만에 추가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 7함대 군수지원센터 싱가포르사무소가 올해 발주한 MRO 2건을 모두 수주했다. 한화오션은 측은 “함정 기술력에서 미국의 확고한 신뢰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조선업계에서 미국은 경쟁력을 잃어왔고, 이는 MRO 역량 감소로 이어졌다. 지난해 전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중국 59%, 한국 23%, 일본 13%였는데 미국은 0.04%에 그쳤다. 미국 연방회계감사원(GAO)은 지난 2022년 “미국 해군은 지난 5년 동안 MRO 지연 문제로 함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는 매년 항공모함의 절반, 잠수함 3척을 운용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의 손해”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선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은 선박 MRO 사업에 강하다. 천강우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한국 조선사들은 함정 MRO에 필요한 도크(선박 건조 공간)를 갖추고 있고 대형 특수선박을 오랜 기간 건조해 온 기술적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올해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맺으며 미군 MRO 사업을 준비했다. MSRA는 미국 정부가 인증된 MRO 기술력을 갖춘 민간 조선소와 맺는 협약이다. 양사는 MSRA 체결로 앞으로 5년간 미국 해군의 함정 MRO 사업 입찰에 공식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모도인텔리전스는 올해 전 세계 해군 함정 MRO 발주 규모를 약 81조원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미국 해군 물량만 20조원 규모에 달한다.
미국 측 주요 인사들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MRO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스티븐 쾰러 제독(대장)은 지난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만나 정비 중인 월리쉬라호를 살펴봤다. 이 자리에서 추가 MRO 협력을 논의했고, 이는 이번 유콘함 수주로 이어졌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7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찾아 정기선 HD현대 부회장과 함께 창정비 시설을 둘러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를 올려받고, 이를 MRO 예산으로 쓰려는 생각같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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