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개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도 AI 분야 연구자들이 상을 휩쓸면서 ‘AI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데이비드 베이커(62) 미국 워싱턴대 시애틀캠퍼스 교수와 데미스 허사비스(48)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39) 구글 딥마인드 수석과학자를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뼈와 피부, 근육 등 생명의 모든 부분에 기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올해 화학상 수상자들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디자인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베이커는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단백질은 일반적으로 20가지의 아미노산이 긴 사슬처럼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다. 베이커는 이 아미노산을 이용해 기존의 단백질과 완전히 다른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03년 첫 설계에 성공한 베이커는 의약품, 백신, 나노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 연구를 응용했다. 2021년에는 단백질 접힘을 예측하는 ‘로제타폴드’를 개발해 단백질이 잘못 접힌 구조로 생기는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 연구에 진전을 가져왔다. 베이커의 연구는 목적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데 의의가 크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사비스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딥마인드의 CEO며, 점퍼는 딥마인드의 연구원이다. 둘은 2020년 AI 모델 ‘알파폴드2’를 발표했다. 190개국에서 200만명 이상이 사용한 알파폴드2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확인된 약 2억개의 단백질 구조를 대부분 예측해냈다. 전 세계 연구자들은 알파폴드2로 항생제의 내성을 더 면밀히 이해하고,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단백질 효소의 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노벨위원회는 알파폴드2가 단백질 구조에 관해 구글의 검색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기초 생물학 등 관련 분야의 발전을 가속했다고 평가했다. 허사비스와 점퍼의 단백질 구조 논문은 2021년 출판된 뒤 1만3000회 이상 인용되는 등 학계에서 높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판 노벨상으로 불리는 ‘래스커상’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노벨상이 주로 순수 학문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AI 관련 연구자들이 연달아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AI가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베이커는 총상금 1100만 스웨덴크로나(약 14억3033만원) 중 절반을 받는다. 나머지는 하사비스와 점퍼가 반씩 나눠 갖는다. 화학상을 마지막으로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7명이 모두 공개됐다. 이번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국적은 미국 4명, 영국 2명, 캐나다 1명이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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