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소수 부족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움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구두 장인이 아름다운 구두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 아름다운 구두 생산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그를 먹여 살렸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작업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 마을의 구성원들은 화가를 먹여 살렸다. 그러한 노동은 전혀 불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구성원들은 아름다움의 생산을 위해 자연스럽게 힘을 모았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화폐가 아닌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나고 자란 이 세계에서는 잘 상상되지 않는 방식이다. 모든 사물과 시간이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최근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중 하나는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시간과 노동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를 착취하려는 수많은 요구들에 동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자본만을 가치 측정의 수단으로 여기게 되지 않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자본주의라는 고착된 거대한 이데올로기 안에서 별 수 없이 살아가는 연약한 한 개인으로서의 작은 선언이다.
이를테면 극작가로 일하는 친구의 연극에 보수 없이 참여해 연극배우가 돼 보는 것, 독자 분의 결혼식을 위한 축사를 고료 없이 쓰는 것,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 비 오는 날 버려진 어린 고양이를 주워다 키우는 것, 배달용기를 깨끗이 씻어서 분리 배출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커리어에도, 통장 잔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일들에 전념하고 매진하는 것은 나의 삶 역시도 자본의 방식으로만 측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다. 이러한 노력이 어쩌면 나의 생활을 더욱 궁핍한 것으로 느껴지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 바깥의 다른 가능성들을 하나둘 실험해보고 싶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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