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가상현실 방식의 게임이 e스포츠의 주를 이룰거라 확신한다. 아마도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오버로드’나 ‘소드 아트 온라인’같은 형태일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한정 선결조건이 하나 있다.
e스포츠와 망 사용료. 언뜻 보기엔 연관 없는 단어의 조합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가상현실 방식의 게임을 떠올려보자. 눈 앞만 아니라 사방에 게임 속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해야 한다. 막대한 통신 트래픽이 필요하다. 게임사와 국내 통신사 갈등은 예고된 미래다.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20년 6월, 에픽게임즈와 국내 통신사간 벌어진 갈등이 그것이다. 전말은 이렇다. 에픽게임즈가 글로벌 게임 유통시장에 뛰어들며 스팀과 경쟁에 나섰다. GTA5를 무료로 배포했는데, 이 게임이 인기작이라 단시간에 다운로드가 몰리며 통신사 트래픽이 폭증했다.
통신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추가 트래픽 발생 비용을 지불하라고 행동에 나섰다. 에픽게임즈는 망 중립성을 이유로 이 요구를 거절했다. 이 문제는 21대 국회 입법으로도 이어졌다. 여·야할 것 없이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22대 국회도 비슷하리란 전망이다.
미래 e스포츠 게임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이에 지난 8월, 연관 부처·기관의 입장을 서면질의로 확인해 봤다.
먼저 공정거래위원회의 회신이다. 공정위는 “콘텐츠사업자(CP)에 대한 망 사용료 부과는 제도 도입 취지, 규율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다만, 현행법상 불공정 거래 행위의 금지 규정과 중복되지 않도록 수범대상 및 규율 범위의 명확화가 필요하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공정위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의미다.
망 사용료는 미국과의 통상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에도 의견을 요청했다. 산자부는 “망 이용료 논의와 관련하여 통상규범 합치성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국회·소관부처 및 미국 통상당국과 긴밀한 소통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 4월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이 ‘반(反)경쟁적’이라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국은 2023년 내내 여러 상황에서 한국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망 사용료 논의는 이해 관계에 따라 사별로 입장 차이가 있다”며 “망 사용료 부과가 국내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 국내·외 CP 간 역차별 및 형평성 문제, 국내·외 입법 및 정책 동향 등을 고려하여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현재까지 발의된 망 이용료 법안은 국내외 사업자들을 차별하는 법안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도 “다만, 통상적인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개별 법안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갑갑하다. CP와 통신사간 갈등은 여전한데, 부처들은 전반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문제는 이 논의에 e스포츠계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망 사용료 부과 강제 시 우리 e스포츠가 갈라파고스화 되진 않을까 우려가 커진다.
정부는 말로만 페이커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의견도 경청하길 바란다. e스포츠 팬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도경 강유정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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