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동길을 걷던 중 정동제일교회(천영태 목사) 벧엘예배당 앞에 섰다. 1897년 10월 준공한 옛 예배당은 사적 제256호로 지정돼 있다. 일본인 건축가 요시자와 토모타로가 설계했고 대한제국 황실 최고 도편수 심의석이 시공한 건물로 19세기 말 미국의 예배당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정동제일교회 교인들이 127년 동안 이 예배당을 지켰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서울에 선교사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손길이 닿은 건물이 또 없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100살을 넘긴 선교 흔적 산책’은 이처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 정취가 남아 있는 서울의 여러 건축물 순례를 떠나 보는 건 어떨까.
거대한 박물관 ‘정동’
서울 중구 정동은 19세기와 21세기가 혼재된 거대한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모던한 외관을 지닌 최신식 건물들 사이사이에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한 옛집들이 적지 않다.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 외에도 대한제국의 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과 해외 손님을 맞이했던 영빈관격의 돈덕전을 비롯해 1905년 을사늑약의 아픔을 지닌 중명전과 옛 러시아공사관 터 등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정동을 대표하는 서양 건축물을 꼽으라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1890년 우리나라에 온 성공회 초대주교 코프 사제가 1922년 착공해 1926년 완공한 뒤 헌당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이다. 197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현재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뒤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구세군역사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세워진 이 건물은 서울시 기념물 제20호다.

1916년 준공한 배재학당역사박물관도 정동의 오랜 이웃이다. 2001년 서울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역사박물관 외벽에는 군데군데 파인 곳을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6·25전쟁 때의 상흔이다. 역사박물관은 1885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가 세운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 개관 시간에 방문하면 언제든 관람할 수 있다.

언덕을 내려와 정동길을 따라 북쪽으로 400m쯤 걸어가면 이화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화박물관을 품고 있는 이화여자중·고등학교는 1886년 5월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 기관이었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915년 미국인 사라 심슨의 헌금으로 세워졌다. 6·25전쟁 때 붕괴됐다가 1961년 복구했고 2002년 등록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2011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적색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아치형 정문이 정겨운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이화 동문들의 기증품과 유관순교실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이곳에서 나와 서대문역 방향으로 300m 남짓 가면 나지막한 언덕에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한성교회(유전명 원로목사)가 나온다. 비교적 최근인 1960년 세워진 이 교회는 서울에 사는 화교들의 신앙 공동체로 서울미래유산 중 하나다. 교회의 정확한 이름은 ‘여한 한성중화기독교회’다. 여한(旅韓)은 한국에 머무는 나그네라는 뜻으로, 1912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교회다.
아니, 여기 서울 맞아?
강북삼성병원을 지나 긴 언덕으로 접어들자 새로 지은 아파트 옆에 한 폭의 그림 같은 스위스대사관이 등장한다. 맞은편 언덕 위에는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집이 있는데 붉은색 벽돌 벽체에 기와를 얹었다. ‘봉선화’ ‘고향의 봄’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홍난파도 이 집에 살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기는데 골목 안쪽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이정표 삼아 발길을 옮기면 또 다른 서양식 주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가 짓고 살았던 ‘딜쿠샤’다. 그는 현재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돼 있다.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주택은 1923년 착공해 이듬해 완공된 저택이다.
201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집의 표지석이 유명하다. 표지석 윗줄에는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 ‘딜쿠샤’를 영어 알파벳 대문자로 새겨 넣었고 아래엔 ‘PSALM CXXⅦ-1(시편 127편 1절)’이라고 적혀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으로 300여m쯤 이동하자 화강암으로 지은 두 채의 고풍스러운 양옥을 만날 수 있다.

‘이회영 기념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이 집은 긴 세월 ‘캠벨 하우스’로 불렸다. 서울시가 2019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한 이 집에서는 미국 남감리회 파송을 받은 조세핀 캠벨 선교사가 살았다. 배화여대의 전신인 배화학당을 세운 인물이다.
마침 독립을 꿈꾸며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이회영 기념관’이 최근 서울 중구 예장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일반에 공개됐다.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 등 선교사가 세운 대학에서도 잠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연세대 캠퍼스 서쪽 끝에 있는 언더우드가기념관이다. 연희전문학교 3대 교장인 호러스 H. 언더우드 박사가 1927년 세운 주택으로 1974년 연세대에 기증했다.
무관심 속 사라지는 기독 유산들
서울 종로 YMCA 건물 뒤편 선교 유적이던 ‘가우처 기념예배당’은 2015년을 전후해 교계의 무관심 속에 철거됐다. 이 예배당은 1923년 미국감리회 한국연회가 ‘미국 감리교회 해외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200㎡(60평)에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적조 건축물로 아치가 아름다운 고딕식 창문이 유명했었다.
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은 1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한국교회가 교세만 자랑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던 유서 깊은 예배당 등을 보존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제2, 제3의 가우처 예배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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