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흑인이 맞느냐”며 인종 정체성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에게 압박 질문을 한 기자를 면전에서 비난하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트럼프 측은 유색인종 유권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날 토론에 응했지만 논란만 일으키며 역효과를 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에서 “그녀(해리스 부통령)는 항상 인도계 혈통이라고만 홍보해 왔다. 나는 몇 년 전 그녀가 우연히 흑인으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흑인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또 “이제 그녀는 흑인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며 “그래서 그녀가 인도계냐 흑인이냐. 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항상 인도계였는데 갑자기 흑인으로 돌아섰다. 누군가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해리스의 인종 문제를 거론하자 관중석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해리스는 오래전부터 “흑인인 게 자랑스럽다”며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수차례 언급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협회 소속 일부 기자들이 트럼프 초청에 반발하며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럼프가 “나는 에이브러햄 링컨 이래로 흑인을 위한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자랑했을 때는 관중석에서 탄식이 나왔고 일부는 헛웃음을 지었다.
트럼프가 질문자로 나선 ABC뉴스의 레이첼 스콧 기자와 설전을 벌일 때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스콧 기자는 트럼프가 흑인 검찰을 모독하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에 대해 가짜 의혹을 제기한 점 등을 지적하며 “왜 이런 말을 한 사람을 흑인 유권자가 믿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인사 한마디 없이 이렇게 끔찍한 질문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ABC 출신이냐. 나는 그들이 끔찍한 가짜뉴스 방송이라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또 “좋은 의도로 나왔는데 부끄러운 일”이라며 “아주 무례한 소개”라고 화를 냈다.
트럼프는 해리스를 향해 인지력 검사를 받을 것을 제안하면서 “알지 모르겠는데 사실 전달 차원에서, 그녀는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었다. 인지력 시험도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이날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분열을 조장하고 무례하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인들은 더 나은 리더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트럼프가 한 말은 역겹고 모욕적”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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