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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차노유와 무소유

김시래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도쿄 시부야 인근 대로변에 35명의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멈춰섰다. 가이드 김범진씨는 요즘 난리났다는 오니츠카타이거 매장부터 들른 뒤 일본의 캐릭터를 상품화한 전자제품으로 가득한 파르코백화점 6층으로 가라며 일행의 동선을 살폈다. 요즘 젊은이들이 군침을 흘리는 꼼데가르송도 있는데 희소성을 높이려는 마케팅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을 테니 서두르라고 조언을 덧붙이고 정확히 1시간의 쇼핑시간을 주겠다고 선심쓰듯 말했다.

관광객들은 서둘러 하차해 대로를 건너 신발 매장으로 향했다. 오니츠카타이거 매장 1, 2층은 귀가 먹을 만큼 강한 비트의 음악과 현란한 조명이 모던한 디자인의 신발 위로 쏟아졌다.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로 북적였고 늘어선 줄이 인도까지 이어졌다. 안사람과 나는 그쪽이 아니었다. 와인인지 위스키인지 분간이 어려운 오묘한 맛의 1200엔짜리 간노코 보리소주를 담아갈 검정백을 사기 위해 인근 무인양품으로 직진했다. 발걸음을 옮기다 폴리스 선글라스 매장이 눈에 띄었고 접이식 선글라스를 하나 사 가방에 넣고 다니면 자외선이 강해진 서울 거리를 오가는데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게다가 세일이었다. 가방과 안경을 모두 사려면 서둘러야 했다. 하코네의 고즈넉한 풍광을 즐기던 관광객들은 도쿄의 중심가에선 ‘물건’에 정신이 팔려 너나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현대인의 물신 숭배가 자본주의를 지탱한다. 브랜드는 소유욕의 현신이고 명품은 최상위층의 계급장이다. 립스틱이나 향수를 넣고 다니려고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시간을 보기 위해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차는 사람은 없다. 소셜미디어에 고가의 와인을 줄줄이 앞세우거나 화려한 골프 패션을 뽐내는 이들이 단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그것들의 전시에 열을 올리진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얻는 자기도취적 만족감이 그것들의 뿌리다. 무인도에 산다면 브랜드나 명품은 필요 없을 테니까. 기업은 사람들의 이런 과시적 욕망을 부추겨 그들의 월급을 쓸어 담는다. 이들이 부추기는 불필요한 욕망을 분간해 걷어낸다면 불황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대처하는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센리큐(1522~1591)는 흙으로 벽을 바른 작고 소박한 다실에서 차를 즐긴 일본의 다도 문화의 창시자다. 그는 값비싼 다기를 고집하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릇을 사용하는 등 소박한 차도를 실현했다. 절제된 고요함 속에서 차를 끓여 직접 손님을 대접하는 차노유의 전통이 그것이다. 차 가루를 풀고 뜨거운 물을 붓고 젓는 격불로 찻물을 우려내 차를 대접한 뒤 다시 찻잔을 씻고 제기를 담는 천을 접는 일련의 과정은 묵언수행처럼 평온함 속에서 평화와 존중, 순수함과 평정성을 구현하는 경지다.

차를 대접하는 상대방을 평생에 한 번뿐인 만남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기일회의 철학도 배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당대 최고 권력자를 섬기면서도 소박함을 중시하는 ‘와비차’의 문화를 완성시킨 센리큐는 황금 장식의 사치스러운 차도를 즐기던 도요토미의 미움을 사 자결하고 만다.

당신 차례다. 옷장과 신발장을 들여다보라. 당신의 욕망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됐다. 타인을 의식하는 경쟁 심리와 인정 욕구는 행복의 영속성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배고픔이 반찬이라던 신사임당이나 박주산채를 즐기자던 시구처럼 살자는 뜻이 아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다. 가끔은 유행도 따르고 남의 시선도 봐야겠지만 필요한 것을 선별하고 집중하는 자기주도적인 생활 방식을 검토해보자는 말이다.

김시래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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