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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작가 낙서마을 vs 동백 파마머리… 色다른 두 섬

1개 섬 1개 미술관 꿈꾸는 신안군

압해도 ‘그라피티 아일랜드’ 조성
건물·아파트 외벽 등 곳곳 추상화
암태도엔 韓작가들이 벽화 조성

스페인 작가 덜크가 지난 5일 신안군 압해읍 읍사무소 외벽에 그린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안군은 압해도에 덜크를 비롯한 세계적인 작가를 초청해 ‘그라피티 아일랜드’를 조성한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압해도)의 읍사무소. 이 공공기관 건물 외벽에 초현실적인 동물 그림 벽화가 조성돼 지난 5일 언론에 공개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신안 갯벌의 명물 장뚱어의 입에서 육지의 맹수 호랑이가 튀어나오는 이 해학적인 벽화는 스페인 작가 덜크가 막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한국의 나오시마’를 꿈꾸며 ‘1개 섬 1개 미술관’을 추진하는 신안군이 군청 소재지 압해도에 추진한 ‘그라피티 아일랜드’ 조성 사업 첫 결과물이 나와 기자들에게 이날 처음 보여준 것이다.

신안군이 예술문화기획사 어반 브레이크와 함께 ‘위대한 낙서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1차로 올해 덜크와 미국 작가 존 원,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 세계적인 작가가 참여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미술 작가로는 유일하게 탐사전문가로 활동하는 덜크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이번 한국 작업에서는 달랑게, 저어새, 쇠제비갈매기 등 신안 갯벌의 주인공인 바다 생물과 한국의 상징 같은 육지 동물 호랑이를 한 화면에 결합시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했다.

존 원은 압해읍의 신혼부부 아파트 외벽에 추상화 작업을 한다. 존 원은 그라피티 예술 분야의 간판 작가로 2015년에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문화예술훈장을 수상했다. 여러 세계적인 기업과 협업했고 국내 기업 중에선 LG전자와 작업하기도 했다.

존 원에게 할당된 장소는 신안군이 주민 유입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자체 예산으로 구입한 뒤 지역 정착 신혼부부에게는 월세 단돈 1만원으로 임대해주는 저층 아파트의 외벽 2곳이다. 소멸 위기 지역 활성화 사업의 상징 같은 장소다.

존 원은 “에너지와 생기를 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려 관람객들이 작가를 상상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며칠 사이 그린 밑그림에는 노랑 파랑 빨강 등 원색을 사용해 나비를 추상화한 이미지를 사선으로 배치했다. 사뭇 리듬감 있고 경쾌했다.

9월에 신안을 찾을 빌스는 농협 본점 벽면에 한국인의 얼굴을 소재로 벽화를 그린다. 그는 붓질이 아니라 드릴로 벽면을 쪼아서 음영을 주는 기술을 활용한 자화상 작업으로 이름을 얻었다. 포르투갈 혁명을 거치며 건물 외벽이 훼손되며 변화된 것에 영감을 받았다.

압해도 낙서마을 조성 사업은 2026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추진된다. 장원철 어반 브레이크 대표는 “올해 시작한 세 명의 작가를 필두로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작가 총 7∼10명이 참여한다. 이들 외에 내년부터 국내 작가 10명(팀), 해외 작가 10명(팀) 등 총 30여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벽화 그리기는 새롭지는 않다. 한국에서도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진행됐다. 부산 감천마을(2009)과 서울 이화마을(2006)이 대표적이다. 압해도 위대한 낙서마을은 기존의 마을 벽화 사업과 차별화될 수 있을까.

장 대표는 “세계적인 작가를 초빙함으로써 누가 그렸는지에 방점이 찍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원은 “거리예술은 주로 도시 지역에 있다. 문제는 도시인은 바빠서 그 예술을 그냥 스쳐간다는 점”이라면서 “신안은 사람들이 휴가를 와서 쉬면서 머무는 곳이라 거리예술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천사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암태도(암태면)에는 한국 작가들이 그린 벽화가 이미 조성돼 있다. 그래서 압해도와 암태도 두 섬이 해외 작가 대 한국 작가 타이틀 매치를 하는 느낌을 준다.

관광객이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암태면을 방문해 기동삼거리의 일명 ‘동백나무 파마머리’ 벽화를 찍고 있다. 낙향한 지역 작가 김지안씨가 2019년 4월 천사대교 개통 직전 집 주인 노부부를 모델로 삼아 조성한 이 벽화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 관광 명소가 됐다.

암태면 기동삼거리의 일명 ‘동백나무 파마머리’ 벽화는 2019년 4월 천사대교 개통 직전에 조성됐는데 벌써 전국 각지 관광객을 끄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김지안 작가는 담 너머 동백나무가 사람의 머리 모양 같은 느낌을 주는 데서 착안해 동백나무를 머리처럼 얹고 있는 노부부의 웃는 얼굴을 그렸다. 낙향한 지역 작가가 지역 주민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말 암태도에는 한국 작가가 그린 또 다른 벽화가 탄생했다. 경기도 양평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서용선 전 서울대 교수가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념해 2년에 걸친 작업 끝에 지난해 11월 완성한 역사화다. 과거 미곡창고로 쓰였던 구 암태농협 창고 건물이 캔버스가 됐다.

서용선 작가가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념해 옛 농협 창고 내·외벽에 완성한 역사화.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4일 착취에 분노한 소작인들이 암태도소작인회를 결성해 지주에게 소작료 4할 인하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했다. 주동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 위기를 겪었으나 석방투쟁과 단식투쟁, 전국적인 연대 끝에 성공했다. 강렬한 원색과 거친 선을 사용해 ‘사회적 분노’를 담은 역사화를 그려온 서 작가는 건물 외벽과 내부의 벽에 소작 쟁의와 관련된 장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냈다.

신안군은 이 밖에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노대도), 영국 조각가 곰리(비금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도초도) 등과 협업해 예술섬 조성을 차곡차곡 진행 중이다.

신안=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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