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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북한의 전략적 시계추 외교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지난달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제4조 전쟁 시 자동개입 조항 해석과 어떤 무기와 첨단 군사기술을 주고받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다. 북·러가 접근한 것을 단순히 국제사회 왕따 국가끼리 전쟁놀이를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러 관계의 변화는 미 대선을 앞두고 미·중 대결 속에 러시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고,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시기 미·소 대결이 동서 진영을 대표한 적대적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현 미·중 대결은 넌-제로섬 게임이다. 더 이상 미국과 중국은 한 진영을 대표해 국제공공재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책임 있고 선한 패권국이 아니다.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하는 카르텔 구조다. 미국은 가치와 이념 아래 동맹국과 우방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끌어들여 국익을 위한 통합억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아직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의 움직임은 조심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향후 재건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미국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미국을 넘어 국제사회 맹주를 바라는 중국에 브릭스나 통상 개발도상국, 제3세계 등 비서구권 국가를 통칭하는 글로벌사우스는 정치적이며 전략적인 미래다. 그럼에도 중국에 유럽, 일본, 호주 등 친미 국가들은 경제와 첨단기술 측면에서 포기할 수 없는 현재다. 중국이 북·러와 한데 엮이지 않으려는 것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부정적 시선에 대한 부담과 이해관계 때문이다.

지난 5월 집권 5기를 시작한 푸틴이 첫 해외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방문했다. 미국 중심의 서방에 맞서 시진핑과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실상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중국이 북·러와의 밀착이 부담스러운 만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높아진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미·중 대결 구도 속에 자칫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새로운 안보협력체를 그리고 있다. 러시아는 서쪽으로는 최근 상하이협력기구(SCO)에 가입한 벨라루스를 내세워 유럽과 안보장벽을 쌓고, 동쪽과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 구상을 본격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해외 순방 일정으로 동북아의 북한과 동남아의 베트남을 이어 방문한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이다.

북한도 북·중 수교 75주년임에도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북한에 대한 정책 결정을 미루는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다. 내년에 끝나는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북한이 지난달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정책들을 재점검한 것도 북·러 조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북·중·러 간 도문지역이나 베트남과의 협력까지도 확장해 새로운 개발 및 발전 계획을 추진하려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새로운 안보협력 구상이 구체화되면 다극화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골치 아픈 일임에 틀림없다. 러시아의 안보 구상에 북한이 편입돼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돼도 북·중 관계가 깨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계추 외교를 펼쳐나갈 것이다. 과거 중·소 분쟁 사이에서 보였던 줄타기 외교와는 다르다. 북한은 다극화된 세상 밖으로 나올 전략적 시계추가 되려고 하는데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품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하고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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