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시간제 = 나쁜 일자리’ 인식… “한국형 유연근로 모델 찾아야”

[워라밸 현장을 가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하루 8시간 일하는 주 40시간 전일제가 노동시장에 굳어져 있다. ‘시간제’라고 말하는 고용 형태는 아르바이트나 단시간 일자리에 치우쳐 있어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하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활성화된 ‘정규직과 근로조건이 같은 시간제 근로’를 하루아침에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두 나라의 높은 출산율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간 주권’ 개념을 한국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선 부부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유연한 근무체계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성미 연구위원이 분석한 ‘해외 주요국의 여성 시간제 특징’을 보면 자녀가 있는 여성(25~54세) 중 시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이었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는 69.2%, 독일은 64.9%다. 재택근무 비율은 남녀가 비슷한 경향을 보였고 네덜란드는 평균 15%, 독일은 14% 수준이다.

시간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주된 답변은 ‘자녀돌봄’이었다. 덴마크 핀란드 등에선 ‘교육 및 훈련’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그리스 스페인 등은 ‘전일제 일자리가 없어서’라는 답변 비중이 높았다.

반면 한국은 남녀 모두 핵심연령층인 25~54세에서 시간제 비중이 현저히 낮아지고, 25세 미만과 60세 이상에서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고정된 전일제 일자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변경 신청 권리를 법·제도로 보장하고 있어 전일제와 시간제를 안정적으로 오갈 수 있다는 것이 한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정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한 한국에서 시간제는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해 관련 논의 조차 어렵다”며 “2~3시간 근로시간을 줄이면 업무를 어떻게 배분할지, 인사 평가나 임금체계는 어떻게 반영할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편적인 유연근무제로 방향을 설정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한국에 맞는 유연근로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육아휴직 급여 상향, 2주 단기 육아휴직 도입,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확대와 시간단위 사용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도 기존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육아를 위해 근로자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별 고용·임금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등 근본적인 저출산 원인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며 “휴가·휴직 제도도 필요하지만 근로자가 ‘시간 주권’을 누릴 수 있는 부분이 먼저 개선돼야 현장에서 제도가 작동하고, 출산율 상승이라는 결과도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남현주 가천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 등 남성 육아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여성이 빠르게 직장에 복귀하고 경력단절이나 승진 배제 등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육아와 일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 환경,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현재 20, 30대에게 굉장히 중요한 가치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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