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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트럼프 ‘정치의 종교화’… 보수 복음주의와 전례 없는 결속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180교회에서 라운드테이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흑인 교회인 이곳에서 “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후로 흑인 국민들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보수 공약’으로 신뢰 쌓은 트럼프
정치 팬덤 ‘마가’ - 복음주의 결합
그들의 정책 선호도 최우선 삼아
종교적 노선에 분열 심화 분석도

“미국의 종말이다. 나는 이 재판을 ‘가짜 사건’이라고 보지 않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겠다.”

보수 기독교 단체 ‘페이스 윈스’(Faith Wins)의 대표 채드 코널리는 최근 미국 기독교지 크리스천타임스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사건 유죄 평결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번 평결이 오는 11월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려는 사람들의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텍사스주 댈러스의 대형 교회 목사인 로버트 제프리스는 “이번 기소에는 증거보다는 트럼프의 여론조사 지지율 수치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기소라는 주장을 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보수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전례 없는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정치 팬덤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가장 보수적인 유권자 집단으로 평가받는 복음주의 기독교가 화학적 결합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공영매체 NPR과 PBS, 매리스트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복음주의 백인 유권자 10명 중 9명은 트럼프에 대한 평결이 대선 투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에 대한 지지 가능성을 더 키웠다고 답했다. 유죄 평결로 지지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인구 중 14%가량이 백인 복음주의자다.

트럼프가 처음부터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초기만 해도 트럼프에 대한 복음주의 유권자 지지율은 20%대에 그쳤다.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나 보수 논객 벤 카슨 등을 밀어주면서 트럼프 대세론이 한때 흔들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2016년 5월 공화당 경선 승리를 확정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복음주의 유권자 구애에 나섰다. 그는 공화당 대의원 과반 획득 이후 곧바로 복음주의 지도자 500여명을 뉴욕으로 초청해 동성애, 낙태, 종교 자유 등에 대한 보수적 공약을 설명했다. 또 “종교가 먼저고 정치는 맨 나중”이라고 말한 독실한 기독교인 마이크 펜스를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특별한 종교성을 드러낸 적이 없는, 두 번이나 이혼한 유명인이어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의심을 극복해야 했다”며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펜스를 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연방대법원을 보수 우위로 만들었고, 주요 법원에도 보수 성향 판사를 포진시키는 데 성공하며 보수 어젠다에 대한 실적을 쌓아갔다. 그의 확고한 ‘우클릭’은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신뢰 기반을 탄탄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프리스 목사는 “순진한 신뢰가 아니라 실적에 기반을 둔 신뢰”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제 복음주의 유권자 사이에서 ‘대체 불가능한’ 정치 지도자 지위에 올랐다. 당내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복음주의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며 지지를 확인했다.

재선을 준비하면서 트럼프의 공약은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가치와 더욱 일체화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반기독교 차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법무부 특별 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고 했고, 성전환을 장려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연방 프로그램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 2월 종교방송인협회와의 인터뷰에선 “우리는 이 나라에 기독교를 되찾아 와야 한다”며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수준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WP는 “트럼프는 보수적인 기독교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정책 선호도가 여전히 자신의 최우선 순위임을 적극적으로 알려 왔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집권 2기 로드맵으로 평가받는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에도 이런 관계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모든 연방 규칙, 기관 규정, 계약, 보조금, 규정 및 법안’에서 낙태, 생식 건강, 성평등 등의 용어를 삭제하고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를 포르노로 취급하며 범죄로 여겨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성별 특성에 따른 차별 금지 규정’ 폐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설립한 젠더정책위원회 폐쇄도 요구하고 있다. 스티븐 프로테로 보스턴대 종교학 교수는 “기독교 보수주의가 세속적인 마가 정치 운동과 여러 면에서 구별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등장 이후 종교적 노선에 따른 분열이 심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 유권자의 81%, 백인 가톨릭 유권자의 61%, 일반 개신교 유권자 57%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 개신교 유권자 77%, 무신론 유권자 87%, 불가지론자(인간은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입장)의 82%, ‘특별한 종교가 없다’는 유권자 57%의 지지를 받았다.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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