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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은 사우나, 판자촌은 찜통… 한낮에도 에어컨은 언감생심

때이른 폭염과 사투, 구룡마을 르포

물 샐까봐 지붕에 깐 플라스틱판
집안에 열기 그대로 가둬 숨이 턱
32도 무더위에 나무 그늘 의지해

최고기온 32도를 기록하며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에 3평 남짓한 쪽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최고 기온이 32도를 웃돌았던 지난 11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은 찜통처럼 달아올랐다. 마을 주변을 잠시 둘러보는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주민들은 나무 그늘로 몸을 피하거나 물을 뿌리며 때 이른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70대 조모씨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는 “이틀 전부터 열대야로 잠을 못 잤다”며 “에어컨이 있지만 전기료가 아까워서 틀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을 내 건강원에서 약을 달이는 A씨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건강원은 솥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포동 주변 무허가 주택 철거로 갈 곳을 잃은 철거민이 모여 형성된 판자촌이다. 주민 약 1000명은 주로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곳에는 3평 남짓한 쪽방이 20개씩 벌집처럼 붙어 있다. 중간에 끼어 있는 방들은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체감온도가 더 높았다.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집을 찾기도 어려웠다. 3시간가량 둘러보는 동안 실외기가 가동 중인 곳은 1곳뿐이었다.

주민에게 더위보다 더 괴로운 건 습기다. 조씨는 “비가 올 때마다 나무로 만든 지붕이 물을 머금는다”며 “비 새는 걸 막으려고 지붕에 플라스틱판을 깔았더니 내부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여름 내내 집이 습식 사우나가 된다”고 했다. 조씨 집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목재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플라스틱판은 물때 탓에 누렇게 변질돼 있었다.

행정구역상 구룡마을이 속한 서울 강남구에는 무더위 쉼터 54곳이 마련돼 있다. 지난달 말 운영을 시작한 무더위 쉼터는 취약층 건강을 챙기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구룡마을 주민에게 무더위 쉼터 이용은 언감생심이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쉼터는 2㎞가량 떨어져 있다. 대중교통 이용도 부담스러운 이들이 쉼터로 향하려면 뙤약볕에서 약 30분을 걸어야 한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쪽방촌 무더위 쉼터 7곳도 강남 일대에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주민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날 주민협의회 사무실로 사용 중인 컨테이너 건물에는 주민 4명이 누워 있었다. 에어컨이 작동 중이었지만 냉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래도 집보다 이곳이 시원하다고 입을 모았다. 70대 주민 김모씨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마을 밖으로 마음껏 나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내부나 인근에 무더위 쉼터 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60대 김모씨는 “과거부터 계속 주민협의회에서 마을 안이나 주변에라도 쉼터를 만들어 달라고 강남구청에 요청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공문을 통해 정식으로 요청한 기록은 없다. 현재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구룡마을은 판자촌이고, 판자촌은 일부 쪽방촌과 달리 불법 건축물이어서 쉼터 지원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상황에서 무더위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판자촌 거주민은 대부분 취약계층과 노인들”이라며 “이상기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의 무더위 쉼터 접근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원준 기자 1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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