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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평화 풍선’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1953년 정전협정으로 전쟁은 멈춰 섰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폭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다. 소위 ‘삐라’라고도 하는 심리전 용도로 쓰이는 전단이다. 한국전 당시 미군은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폭탄이나 대포의 포탄 안에 전단을 넣어 살포해 종이 폭탄이라고도 한다. 휴전 이후에도 서로를 비방하는 전단을 보내며 심리전을 이어갔다.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3조에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1992년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서도 ‘언론·삐라 및 그 밖의 다른 수단·방법을 통하여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아니한다’고 합의했다. 2004년에는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 일명 6·4 합의서를 통해서도 전단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았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해가면서 전단과 같은 낡은 심리전 방식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간이 주도하는 대북 전단 살포가 시작됐다. 70년 전 미국 정보기관과 심리전 부대가 했던 방식을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탈북자단체가 물려받은 셈이다. 2014년 10월에는 북한이 남쪽 민간단체가 보낸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는 일까지 발생해 긴장이 고조됐다. 2018년 판문점선언 2조 군사 분야에 전단 살포를 중지하는 합의사항을 담았고 9·19 군사합의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조차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2020년 6월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6월 4일 김여정 북한노동당 제1부부장이 노동신문을 통해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악의에 찬 행위들이 방치된다면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뒤였다.

지금도 남북에서 띄워 올린 정체불명의 풍선이 우리 국민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로 살포했다. 탈북민단체도 USB와 1달러짜리 지폐를 넣은 대북 전단을 북으로 보냈다.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로 띄워 보내기까지 했다. 북한도 국방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대북 전단 살포가 재개되는 경우 오물풍선을 다시 살포하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풍선을 보내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핑계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지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국민의 불안과 위험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민간단체가 폭탄 돌리기를 하게끔 방치하고 뒤에 숨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풍선만 주고받고 끝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 치의 양보 없이 폭탄을 돌리는 치킨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종이 폭탄일지 모르지만 결국 진짜 총탄으로 바뀌고 미사일이 넘나들어야 멈추게 될지 모른다.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데 정부는 9·19 군사합의 전부를 효력 정지하고 대북 확성기 가동을 재개했다. 북한이 오물을 보낸 것은 분명 유치한 행동이다. 북이 보낸 것은 오물 풍선이고 남에서 보낸 것도 선물 풍선은 아니다. 받는 쪽 입장에서 보면 모두 오물이긴 마찬가지다. 오물을 주었으니 되돌려 받은 것이지 과연 평화를 주었다면 무엇이 왔을까?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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