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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 그만일까요? 현실은 안 그런데”… ‘더 에이트 쇼’의 질문

한재림 감독 첫 시리즈 연출작
8명이 한 공간에서 벌이는 쇼

통쾌한 한 방 없는 불편한 작품
재미 끝엔 뭐가 남나 질문 던져

한재림 감독은 ‘더 에이트 쇼’를 통해 재미만을 추구하는 행태를 꼬집는다. 먹방도 처음에는 대리만족을 주지만, 먹방 경쟁이 치열해지면 과식, 괴식 등 극단적인 형태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그는 “재미의 끝에 갔을 때 고통과 혐오만 남을 수 있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람들은 이렇게 달콤한 케이크 같은 거 먹듯이 기분 좋으려고 돈 쓰는 건데 뭐 하러 자꾸 현실을 말하려 해요. 우리는 그냥 재밌는 거, 보고 즐길 거리만 던져주면 되는 거예요.” 영화감독인 7층(박정민)이 들고 온 각본을 보고 대표가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더 에이트 쇼’는 이 말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저 재밌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더 에이트 쇼’는 한 마디로 ‘불편한 작품’이다. 많은 호평 사이 눈에 띄는 건 ‘다 보고 났는데 불편하다’는 반응들이다. 위층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던 아래층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호기롭게 전복을 꿈꿨지만 어이없이 실패하고 만다. 다시 말해 ‘통쾌한 한 방’ ‘사이다’가 없는 셈이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 에이트 쇼’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을 만나 시청자들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한 감독은 “사실 통쾌함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그러다 보니 불편하게 했다기보다 ‘기분 좋게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요즘 콘텐츠들이 서비스업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중이) 케이크를 원하는 건 알지만 나는 이걸 주면 끝인가 하는 질문이 든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 에이트 쇼’는 영화 ‘관상’ ‘더 킹’ 등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을 등지려 했던 8명이 ‘진짜 같지만 전부 가짜인’ 공간에 모여 시간을 쌓아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쇼를 담은 희비극 시리즈다. 모두 평등해 보이지만 사실 층마다 1분에 쌓이는 돈은 1만원부터 34만원까지 다양하고, 각 층의 방 크기와 (가짜) 창밖 풍경도 다 다르다. 이 때문에 8명 사이에 생기는 계급과 불평등, 착취 그리고 반란과 절망은 그야말로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저 ‘우연히’ 각자의 층을 골랐을 뿐인데 그로 인해 매겨진 계급은 쇼가 끝날 때까지 바꿀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함을 모두가 알지만, 어느 누구도 쇼를 끝낼 생각은 없다. ‘주최 측을 재밌게 하면’ 이 공간에 더 머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어떤 폭력과 수모도 참고 감내한다. 더 큰 자극을 좇는 주최 측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8명의 참가자를 보고 있자면 섬뜩해진다. “사람이 사람한테 할 수 있는 온갖 짓은 이미 다 한 것 같아. 사그라들고 있어요. 불빛이”라며 지루하단 표정을 짓는 8층(천우희)의 말끝에 등장하는 수면고문, 정신고문은 자극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어디로 향해 갈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감독은 “지금은 도파민의 시대잖나. 재미있는 게 중요하고, 알고리즘을 타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옛날에 시네마를 볼 때는 질문도 던지고 고민도 했는데, 그런 게 없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생산자로서의 고민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고민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배진수(3층·류준열)가 영화 촬영지로 들어가는 건 ‘지금부터 보여주려는 건 영화고, 당신들을 그 안으로 초대하는 거야’란 의미의 표현이다. 또 광대를 상징하는 1층(배성우)은 찰리 채플린의 분신이며, 영사기에 매달렸던 그가 떨어지며 필름에 불타 죽는 건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란 게 한 감독의 설명이다.

그래서 한 감독은 ‘더 에이트 쇼’에서 의도적으로 짜릿한 즐거움, 쾌감을 배제했다. 6층(박해준)과 8층의 성관계 장면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아래층의 반란이 실패로 끝난 것도 그래서다. 폭력과 고문 장면도 복수를 통한 쾌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쾌한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한 감독은 “먹방을 보면 처음엔 대리만족하고 쾌감을 느끼지만 그게 채널 간 경쟁으로 흐르면 나중엔 엄청난 걸 먹으며 스스로를 고문하게 된다”며 “결국 재미의 끝에 갔을 땐 고통과 혐오만 남을 수 있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에이트 쇼’는 통렬한 블랙코미디지만 끝까지 씁쓸함만 남기며 끝나진 않는다. 쇼가 끝난 뒤 진수가 참가자들을 모아 1층의 장례를 치러주고, 6층이 조화를 보내주는 게 그렇다. 한 감독은 “저는 우리 안의 선량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한테 당했어도 그 사람을 때리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모습”이라며 “명확한 선과 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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