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섬긴 ‘살림’으로 세상 바꾸고자 했던 원주 사람

[책과 길] 장일순 평전
한상봉 지음
삼인, 556쪽, 3만원


무위당 장일순(1928-1994)에 대한 새로운 평전이 나왔다. 가톨릭계 언론에서 활동하는 한상봉이 장일순 서거 30주기를 맞아 그동안 발굴된 자료들을 종합해 우리 시대가 기억해야 할 한 어른의 이야기를 써냈다.

장일순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젊어서는 진보정치인이었고 학교 설립자, 민주화운동가, 협동조합운동가였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을 개척했다. 서예가였으며, 평생 강원도 원주를 벗어나지 않은 ‘원주 사람’이었다.

장일순은 또 시인 김지하의 거의 유일한 스승이었고, ‘아침이슬’ 작곡자 김민기가 아버지처럼 여긴 사람이었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 흠모했던 어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대중에겐 여전히 낯설다. 그는 평생 원주에서 살았고, 감투를 쓰지 않았고,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

책은 장일순의 생애와 활동, 사상, 그와 교류한 인물들을 폭넓게 조명한다. 1970년대 그가 원주에서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운동의 전위로 나서는 과정, 1980년대 들어 그와 김지하, ‘원주그룹’이 생명운동으로 전환하는 과정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당시 민주화운동가 대부분이 정치투쟁에 몰두했지만 그는 외롭게 생명운동으로 나아갔다.

책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 “바닥으로 기어라” “이봐, 너무 잘 살려고 애쓰지 마. 그저 보통으로 살면 되는 거야” 같은 그가 자주하던 말들, ‘開門流下’(개문유하·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나 ‘處與寒民’(처여한민·춥고 배고픈 사람들과 함께하라) 등 자주 쓰던 글씨들을 소개한다. 특히 ‘모심’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공경의 태도, 지역이 새로운 질서를 실현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동학과 천주교는 물론 유교와 불교까지 혼합한 한국적 생명사상인 ‘살림’의 철학 등을 부각한다.

장일순은 1994년 67세의 나이에 부인과 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산동 집에서 ‘내 이름으로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소설가 김성동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도덕정치가’라는 글에서 “대중성, 민중성, 소박성, 일상성 속에 들어있는 거룩함을 되찾아 내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한 몸뚱아리의 두 이름으로 더불어 함께 영적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순평한 입말로 남겨준 선생이다”라고 그를 묘사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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