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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의료 이용, 다시 ‘비정상’ 안 되려면


오랫동안 의학 기자로 있다 보니 병원이나 의사 관련 문의를 종종 받는다. 가장 많은 문의가 지방에 사는 지인 혹은 부모님·친척이 아픈데 서울의 좋은 병원, 치료 잘하는 의사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왕이면 ‘빅5 병원’ 명의로 이름난 분이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중에는 1차 병의원 의사의 진단으로 중증질환이 의심돼 대학병원 등 3차 병원 의뢰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질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중증질환이라도 나이나 신체 상태를 고려해 되도록 지역 내 3차 병원 이용을 권하거나 중하지 않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2차 병원 혹은 전문병원을 추천한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서울행을 고집해 곤혹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 어떤 이들은 1·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울 대형병원에서 첫 진료를 받길 원하기도 한다. 이땐 먼저 병의원에 들러 진료의뢰서를 받아 오라고 말해주는데, 환자들 요구로 써 주는 의사의 진료의뢰서는 요식적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환자들은 전국 어디서나 KTX, SRT를 타고 서울의 빅5 병원으로 몰려든다.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이런 의료 수요에 맞춰 병상을 늘리고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진료 수익을 올리면서 호시절을 누려왔다.

하지만 전공의 집단이탈로 빚어진 의료공백 사태가 3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일부 대학병원은 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경영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 대학병원의 황금시대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대형병원들은 이 같은 의료 시스템이 미래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료 사태는 만성적인 저수가로 인한 필수·지역의료의 위기, 행위별 수가체계의 문제점,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여건,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등 대한민국 의료의 민낯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수십년간 굳어져 온 이런 구조적 시스템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중증·응급 환자 진료가 주 역할인 상급종합병원의 박리다매식 경증환자 진료, 닥터 쇼핑(과잉진료) 등 왜곡된 의료소비 행태를 낳았다. 여기에 TV 속 명의를 쫓는 사회 분위기, 대학병원 입원 대기를 부추긴 측면이 있는 효(孝) 문화도 한몫했다. 국민들의 합리적 의료 이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사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 초기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들에 환자 발걸음이 뜸했다. 지난 2~3월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가 줄어 ‘응급실이 응급실다워지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최근 ‘비정상’으로의 회귀 조짐을 보인다. 정부 집계 자료에 의하면 한동안 잠잠했던 대형병원의 응급실 경증환자가 11%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어떤 제도가 만들어져 경증환자의 이용 행태가 개선된 게 아니다 보니 서서히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옛날로 회귀한다면 ‘시장 바닥 같은 응급실’을 다시 보게 될 것은 뻔하다.

의료 이용이 다시 비정상으로 안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국민 주치의제 도입, 지역 우수병원 육성 및 의료진 확보 등 제도적 지원에 대한 논의가 따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국민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서울, 빅 5병원 선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된다.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국민들의 적정 의료 이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이미 띄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든 의료계가 요구하는 의료개혁 상설기구든 좋다. 의·정이 우선 머리를 맞대는 게 중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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