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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예배 자신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간단한 사실로부터 글을 시작할까 한다. 예배는 교회의 근간이자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주기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예배가 본디 불러내는 놀라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 모여 기도와 찬양을 드리고,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왠지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예배에 대한 경이감이 아니라 예배 자체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하다. 예배가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까 불안해한다. 업적과 성공에 목마른 현대인에 맞게 예배에서도 뭔가 실용적인 것을 제공하려 한다. 혼자 있는 어린아이 걱정하듯, 예배만 있으면 뭔가 부족할까 이를 보충하거나 대체할 프로그램을 만든다.

하지만 예배를 놓고 이렇게까지 자조적이고 방어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배를 드리며 도파민이 막 분비되고 뭔가 쓸 만한 것을 이것저것 건지면 좋겠지만 이러한 것이 예배의 본질은 아닌 듯하다. 전쟁과 재해가 발생하고 교회가 박해받을 때도, 그리스도교 문명이 융성하고 복음이 새로운 땅에 도달할 때도 예배가 끊이지 않게 했던 그 힘이 무엇일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벌써 옛날 일처럼 느껴지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되며 대면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됐다. 필자도 집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배가 시작되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책상 위로 올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책상에 올라온 강아지는 여기저기 냄새를 맡다 곧 드러눕고는 설교가 시작되면 매우 편안히 숨을 내쉬고는 곧 잠들었다.

신학자의 반려견이라 유난을 떠는 것일까. 물론 개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예배 때가 되면 꼬리를 치며 책상 주위를 맴도는 강아지 모습에 성 프란시스의 설교를 들으러 모였던 동물의 활기찬 거룩함이 눈앞에 그려졌다. 모니터 옆에서 강아지가 평안히 쉬는 것을 보며 이사야 예언자가 꿈꿨던 맹수의 사나움이 사라질 주님의 날을 상상했다.

강아지가 이런 행동을 일년 넘게 반복하자 궁금증이 생겼다. 인간처럼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보호자와 노는 것도 아닌데 왜 강아지가 예배를 좋아할까. 평소에는 방바닥에서 잘 쉬던 녀석이 왜 온라인 예배가 진행되는 책상에서 잠을 잘까. 보통 필자의 가족은 TV 등으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를 봤다. 그러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배우들의 톤 높은 목소리, 시끄러운 효과음으로 집 안이 꽉 찼다. 하지만 매 주일 오전이면 같은 공간이 아름다운 찬양과 느릿느릿한 기도 소리, 설교자의 온화한 목소리로 채워진다. 평소 경험하는 자극적이고 분주한 소리와 분명 크게 다르다. 강아지가 소리에 민감한 만큼 예배 시간의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즐기며 편히 쉬는 것 같았다.

강아지도 종교적 존재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설교 중에 개가 잠을 자는 것에 기분 나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원래 강아지는 잠이 많아 주위를 경계할 필요가 없으면 쉽게 잠든다. 이것이 강아지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면 예배는 강아지의 강아지다움을 드러내는 차분하고 감미로운 상황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이처럼 찬양과 기도, 설교와 축복으로 이뤄지는 예배가 피조물의 평화로운 본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가 예배의 언어와 몸짓, 분위기에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예배가 지금의 세태에 뒤떨어지고 실용적이지도 않다고 걱정하지만, 오히려 비효율성과 재미없음 속에 예배의 비밀스러운 힘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약한 것을 자랑하던 바울처럼(고후 11:30) 우리도 예배를 대할 때 무엇에 진정 자신감을 가질지 곰곰이, 역발상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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