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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멍때리기

한승주 논설위원


현대인의 뇌는 고단하다. 밀려드는 정보 속에 쉬는 시간조차 온전히 쉬지 못한다. 뇌는 몸무게의 3%에 불과하지만 신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한다. 뇌가 혹사당하면 몸도 쉽게 피로해진다. 우리 뇌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는 부위가 있다.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이 부위가 활성화된다. 해외 여러 연구 결과, 지친 뇌를 쉬게 해서 DMN을 활성화시키면 일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진다. 집중력과 창의력이 높아지고, 아이디어도 많이 나온다. 눈 건강에도 좋다. 머리가 복잡할 땐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는 게 필요한 이유다.

멍때리기는 숲으로 나가 자연에 몸을 맡기는 산림욕과 비슷하다고 한다.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혈압과 심박 수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불멍’, 파도를 넋 놓고 바라보는 ‘파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 등 각자의 방식으로 과열된 뇌를 식힌다.

멍때리기에 대한 관심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강 멍때리기 대회’의 인기를 봐도 짐작된다. 2014년 장난처럼 시작된 이 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 12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는 2787개 팀이 몰려 경쟁률이 35대 1을 넘었다. 1등을 해봐야 상금도 없는데 너도나도 머리를 비우겠다고 몰려왔다. 본선에 오른 남녀노소 77개 팀은 90분 동안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행사를 주최한 시각 예술가 ‘웁쓰양’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가치 있을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대회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홍콩 네덜란드로 확산됐고, 하반기에는 독일에서 행사가 열린다. 머릿속이 복잡한 건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극한 경쟁과 갈등에 지쳐 잠시나마 세상과 단절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주최 측의 최종 목표는 ‘세계 멍때리기의 날’을 만드는 것인데 각박한 현실을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구나 싶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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