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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회의장의 ‘중립’,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제21대 국회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여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안들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유례없이 빈번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당선자들은 총선에서 야당에 대승을 안겨준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다수당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장 후보들은 국회의장도 기계적인 중립성에 매몰되지 않고 책임지는 국회의장, 개혁하는 국회의장이 되어 국회의 힘을 보여주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와 같은 주장에 선뜻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경우 하원의장은 다수당 지도자로서 당파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국회의장이 당적을 버리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중립적인 국회의장이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우리 국회는 2002년에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 통과시켰다. 국회의장이 특정 정당의 후보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당파성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의사진행을 책임지는 국회의 대표로서 규칙에 따라 중립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상징적으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것이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은 무슨 의미일까? 국회의 규정은 대부분 다수결로 표결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장은 중립적으로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 원내 다수의 의사가 대표되도록 하면 되는 것일까? 다수결은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지혜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필요하다. 국회의장이 다수당과 소수당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의미는 결국 소수당의 의견도 경청한다는 뜻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한다면 국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2002년 국회법 개정에는 다수당이 다수결로 입법 의제를 밀어붙이기보다는 여당과 야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국회법은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여당과 야당의 타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국회의장은 정부와 여당의 선호를 당파적으로 반영했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 운영을 하는 데 필요한 주요 사안들을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2002년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의장이 당적을 포기하도록 했고, 2012년에는 소위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을 통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긴 안목에서 보면 국회는 여당과 야당의 타협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혁적 국회의장’을 명분으로 국회에서 다수당의 의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화 이후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의 타협을 촉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결과를 되돌리는 일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적 의제를 다루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국가적 의제들이 정권이 바뀌고 다수당이 교체돼도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의 무대는 국회다.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지혜를 모은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우는 국회의장이 책임지는 국회의장이고 개혁하는 국회의장이다.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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